전생에 대한 단상 /w 박진여, 전현수

당신 전생에서 읽어드립니다.

박진여님의 책을 연령쌤에게서 잠깐 받아서 읽어 봤는데, 전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과거에 내게 본인의 전생을 이야기 한 사람이 두명있었다.
1) 전생에 자기가 50년대 미국에서 살았었던것 같다는 신**
2) 전생에 나와 ***였던것 같다는 오**

나는 그런 얘기를 들을때마다 무슨 엉뚱한 소리람,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봐? 하고 속으로 웃어 넘겼다. 하지만 전생은 강렬한 테마라 기억에 남아있는 이야기들이다.

박진여님의 책을 읽어보고 또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지금까지 어렴풋이 생각만 하고 있던 전생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나에게도 전생이 분명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 책은 전생 리딩에 관한 여러 사람들의 전생과 현생의 스토리들과 현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태도를 가이드하는 책이었다.

만약 박진여님께 내 전생 리딩을 의뢰한다면, 현생에서의 내 가족들을 제외하고 인연이 궁금한 사람이 세명이 있다. 분명히 이 세명은 전생에서 인연으로 만났을 것 같다.

오늘 유투브에 윤회로 검색해보니 전현수 박사의 강연이 나와서 30분 정도 들었다.
불교와 윤회에 관한 강연이었는데 그 중 기록을 남기고 싶은 것을 남긴다.

<전현수 박사님이 만난 불교 지도자와의 문답>

달라이 라마와의 선문답

“윤회를 어떻게 압니까?”에 대한 답변
1) 과거 생이 다 기억나는 경우
2) 선정 수행으로 경험
3) 인명학을 공부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학문)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몸이 죽고 거친 의식이 죽는다. 보고 듣는것과 같은 거친 의식은 죽고, 미세한 의식만 남는다는 얘기이다.

우 떼자니아 사야도(미얀마 불교 정신지도자)와의 선문답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몸이 죽고 마음이 죽습니다.

“무엇이 남습니까”
업이 남습니다.

“업을 운반하는 주체는 무엇입니까”
업은 주체가 없습니다. 업은 스스로 움직입니다.

“우리에게 왜 몸과 마음이 있습니까?”
무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부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수행을 하면 알게 될것입니다.

상윳따 니까야: 부처님의 아라한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집대성한 책
교의 사성제란 고집멸도(苦集滅道)를 말합니다.

1.고(苦)란 괴로움을 말하는데 1)태어남의 괴로움 2) 늙음의 괴로움 3)병듦의 괴로움 4)죽음의 괴로움 5)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 6)원수와 만나는 괴로움 7)구하나 얻지 못하는 괴로움 8)삶의 괴로움 등을 말합니다.

2. 집(集)이란 괴로움은 집착함에서 온다고 하는 고통의 원인에 대한 성찰입니다.

3. 멸(滅)이란 고통이 없는 열반(니르바나)을 말합니다.

4. 도(道)란 열반으로 가는 바른 길을 말하며 1)바른 견해(정견) 2)바른 생각(정사유) 3)바른 말(정어) 4)바른 행동(정업) 5)바른 생활(정명) 6)바른 노력(정정진) 7)바른 기억(정념) 8)바른 선정(정정)의 여덟가지 바른  길 즉 팔정도를 말합니다.

템테이션 – 더글라스 케네디

템테이션 – 더글라스 케네디

빅픽쳐를 재밌게 읽었어서 더글라스 케네디의 템테이션을 중고서적에서 사왔다.
사실 읽기 시작한건 두어달 전쯤 되는데 티비(정확하게는 프듀)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생각날 때마다 한두장씩 읽어서 1/3 정도 읽다가, 남은 부분을 주말에 몰아서 다 읽어버렸다.

정말 남은 부분의 스토리가 너무 휘몰아쳐서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사실 예상할 수 있는 뻔한 스토리이긴 했는데, 약간은 예상을 벗어난 부분도 있긴 했다.

1. 헐리우드, 사회, 현실 그리고 언론
차갑고도 뜨거운 세계 헐리우드를 그리고 있다. 정도만 달랐지, 어쩌면 우리 사회와 현실이 이럴지도 모른다.
사회에서는 나의 이익이 중요하고, 관계를 위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가식을 떤다.
언론이 지배하는 세상, 작은 실수가 엄청난 과오가 될 수도 있다. 한 사람을 매장시킬 수도 다시 부활시킬 수도 있는 것이 매체이다. 그냥 속고 속인다.

2. 살로소돔의 120일
진작에 알고는 있었지만 악명 높은 영화라 보지 않았던 <살로소돔의 120일>이 책 내용에 등장한다.
이 영화의 등장이 의미는 있었다. ‘다른 사람을 철저하게 지배한다’라는 테마로 이 영화와 필립 플렉을 연결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플롯이 좋았다.

3. 성공, 여자, 로맨스
화만 내는 바보같았던 여자 루시.
남자의 성공에 유혹을 느끼는, 혹은 성공한 남자에게만 끌리는 여자, 샐리.
어쩌면 잠깐의 일탈이었을수도 있지만 로맨스를 꿈꾸었고 그럴 용기도 있지만, 결국에는 어마무시하게 성공한(재력적인 측면) 남편의 여자,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정말 사랑일수도) 여자, 마사.
마사와 주인공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 그 와중에 에밀리 디킨스의 시로 서로 소통하는 것이 참 로맨틱했으나, 찐하고 달달하고 용기있게 로맨틱했다고 그 관계가 영원할 수는 없다는 것을 가차없이 보여준다. 

둘이 주고 받은 에밀리 디킨스 시 중 기억에 남는 시 한편, 근데 이 시에 나온 워딩 자체는 좋은데 깊은 의미는 잘 모르겠다는 ㅠ.ㅠ
바로 앞에 사랑이 있다면 / 한 시간을 기다리기 / 그것도 길어 / 마지막에 사랑이 온다면 / 영원히 기다리기 / 그것도 짧아

4. 세상의 중심은 나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면 다 잘나고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 중후반쯤에 깨달았다. 어쩌면 주인공은 정말 흠결이 많은 사람인데 그 자신조차 깨닫지 못한 것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루시와 이혼이라는 과정도 주인공의 흠결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고 주인공의 잘못은 조금은 있지만 전적인 책임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것은 나 자신에게도 대입시켜 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완벽하지는 않다고는 인지하지만 내가 많은 ‘흠결’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살 수도 있다는 것.
“어차피 세상의 중심은 나, 가치관의 기준도 나”라며 그냥 그렇게 살아갈지도 모른다.

미니멀 라이프

올해 가을 쯤 회사 동료로부터 추천받은 MBC 다큐가 있었다.
소제목이 ‘물건이 사는 집’이었다.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다큐였다.
보고 깜짝 놀랬고, 나도 실천해야겠다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혼자 있는 것 치고 물건이 참 많다. 살면서 점점 많아진다.

옷/구두/가방, 오히려 이런 것들은 잘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책, 알라딘 서점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다.
주방기구 및 식기, 이건 더 안사면 된다. 더 살것도 없다.
디바이스, 더 이상 살 것이 없다. 몇개는 심각하게 중고 매매를 고민해야 할듯.
운동 기구, 헬스 끊었으니 다 팔아야 할듯.
여행 기념품들은 정리가 필요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추억의 물건들이 좀 많다.
이것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진짜 고민이 필요하다.
추억의 물건들은 보관해주는 서비스가 있으면 참 좋겠다.

문득 예전에 방문했었던 지인의 방이 떠오르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사람은 미니멀 라이프를 그때부터 실천하고 있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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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지금 읽고 있는 책인데,,, 사실 끝까지 다 못 읽겠다. 
읽다가 왠일인지 흥미를 잃었다.

초반에 사람들이 사랑이랍시고 “재수없게 새침하게” 되는 부분들에서 빈정이 상했다.
어떤 부분이였냐면,, 무슨 ‘마르크스주의’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는데,
쉽게 얘기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되고 신경써 주면 갑자기 별로이게 되는 심리.
사실 주변에 이런 사람들 많이 봤었는데, 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심리였음.
그건 사랑이 아니라 그냥 그 상황을 즐기는 거라고 생각함.
왜 알랭 드 보통은 그게 사랑이라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아. 
한낯 자기애의 감정이 사랑? 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나?

중간에는 재밌고 극하게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고 옛날 생각들도 나고 하긴 했는데, 
계속 읽어보니 참 피곤하다. 그냥 이 이야기가 내 스타일이 아닌 듯 하다.

지금 그냥 책꽂이에 넣어둘지, 미련없이 구매했던 알라딘에 다시 되팔지,
아니면 3분의 2 지점까지 왔으니 참고 끝까지 읽어봐야 할지 고민중이다.

예전에 한 친구가 “맞지 않는 책을 억지로 끝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인생수업

친구가 준 인생수업이란 책을 읽었다. 뭐 특별한게 있을까 하고 읽었는데,
나름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남겨놓는다.

나는 관계의 마무리를 잘 하고 있었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의도적으로 죄의식’을 심어놓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였던가.

관계는 자신을 보는 문

사랑을 정의할 때 환상 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관계가 순수할 때, 그리고 다양한 경험들을 배움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관계는 결과적으로 자유롭게 참여하고 나누는 쪽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규칙과 환상을 고집하는 한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게 하십시오. 미래에 대한 그림과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환상, 계획이나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사랑은 생명을 갖습니다.

모든 관계가 평생 동안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50년 동안 지속되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6개월 만에 종말을 고하는 관계도 있습니다. 어느 한쪽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관계가 있는가하면, 살아있는 동안에 결말에 이르는 관계도 있습니다. 죽음을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떤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면 그 관계가 실패했다고 여깁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관계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배스와 난 사랑하는 사이였어요. 하지만 2년 전에 그 관계가 끝나버렸어요.  영원히 함께할 운명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제대로 된 관계를 맺는데 실패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한 달 전 쯤 나흘 연속으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배스 얘기를 하는 거였어요. 배스에게 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의 관계가 끝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배스를 불러내어 저녁 식사를 했어요. 저녁을 먹으면서 다시 만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어요. 그 대신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이번 관계가 다음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얘기를 나눴어요. 놀랍게도 그 일 이후 우리의 관계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성공적이었고 완벽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헤어졌다가 또다시 만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아직 관계가 끝나지 않았고 치유해야 할 상처들이 남아 있을 때 일어납니다. 하지만 때로 겉으로는 관계가 이미 끝났지만 마음속으로는 그것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만나게 됩니다. 삶에서는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마무리란 관계의 완성과 실패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로 잡는 일입니다.

관계에 실수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정해진 대로 일어납니다. 첫 만남에서부터 작별 인사까지,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관계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자신이 미리 갖고 있는 기준을 버릴 때, 누구를 얼마나 오래 사랑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도 해방될 수 있습니다. 신에게 선물 받은 위대한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이런 한계들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말라

헬렌과 미셸은 둘 다 50대 여성으로 20년 넘게 친구로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로 헬렌은 미셸에게 화가 났고, 4년 전부터 서로 거의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헬렌은 미셸의 이름을 듣기만해도 성을 냈습니다.

“난 지난 4년간 친구에게 주려고 산 생일 선물들을 아직도 지하실에 보관하고 있어요. 미셸이 날 위해 시간을 낼 때까지 선물을 주지 않을 거예요.”

둘 다 재혼을 하고부터 그들은 지금까지 명목상으로만 친구로 남게 되었습니다. 미셸이 먼저 재혼을 했습니다. 헬렌은 진심으로 축하했지만, 자꾸만 자신이 미셸에게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바로 그 즈음, 헬렌은 두 번째 남편을 만났고 두 친구는 이후 계속 소원하게 지냈습니다. 헬렌이 여러 차례 전화를 했지만, 그때마다 미셸은 시간을 내지 못했습니다. 헬렌은 “미셸, 네 생일 선물을 준비했어. 우리 한번 만나자.” 하고 말했지만, 두 사람은 결국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헬렌이 유방암에 걸렸습니다. 헬렌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때마다, 금이 가버린 미셸과의 우정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미셸을 위해 사 둔 그 생일 선물들을 모두 우편으로 보내 주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펄쩍 뛰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안 돼요. 난 지난 여러 해 동안 노력해 왔어요. 난 앞으로도 계속 미셸에게 전화해서 멋진 선물을 준비해 두었다고 얘기할 거예요.”

친구와의 불화가 죄의식 때문은 아닌지, 나는 화가 나 있는 헬렌에게 물었습니다.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죄의식 같은 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친구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하려는 건 아닌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당황하면서 되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내가 말했습니다.

“내 생각엔, 이유야 어찌 됐든 미셸은 당신을 만나지 않음으로써 당신과 친구 관계를 끝내거나, 아니면 최소한 방식을 바꾸려는 것 같군요. 하지만 당신은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해마다 더 비싼 생일 선물을 샀어요. 당신이 첫 해에 그런 행동을 한 건 이해가 가지만, 4년 동안 계속 그렇게 해온 이유가 뭐죠? 선물을 사 봤자 소용 없으리란 걸 알았을 텐데요.”

“난 그때마다 올해는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산 선물들이 어떤 식으로든 달라진 점이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해가 바뀔 때마다 점점 더 좋은 선물을 샀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혀 받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점점 더 멋진 선물을 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헬렌이 당황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러더니 화난 투로 불쑥 쏘아붙였습니다.

“당신은 이해 못해요. 나쁜 쪽은 미셸이에요. 만나려고 하지 않은 쪽은 바로 그 친구라구요.”

그 말을 받아 내가 말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당신이 친구를 위해 산 선물들은 그녀에게 죄의식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요? 당신은 점점 더 좋은 선물을 사면서, 미셸이 그 선물을 받았을 때 무엇을 느끼길 바랐나요?”

마침내 헬렌은 고개를 떨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정했습니다.

“나를 만나 주지 않은 것에 대해 미셸이 죄의식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그녀가 당신 목소리에서 당신의 그런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나요? 어쩌면 그래서 그 친구는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몰라요. 당신은 더 이상 진심으로 선물을 건네는 것이 아니에요. 모두가 죄의식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었어요.” (중략)

죄의식은 우리를 가장 어두운 내면에 묶어 둡니다. 그것은 우리를 나약함, 수치심, 냉정함과 연결합니다. 우리의 부정적인 부분이 그 죄의식을 먹고 자랍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역시 죄의식을 키우는 영양분입니다. 죄의식을 느낄 때 우리의 마음은 좁아지고 하찮은 생각들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수치심을 느낍니다. 이것을 치유하려면 활발히 행동하고, 그 감정을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합니다. 진정한 자아는 죄의식을 알지 못합니다. 진정한 자아는 이 세상의 죄의식을 초월해 있습니다.

Life of PI (영화/책)

이 영화와 책에 대해서 너무나 할 얘기가 많아, 내 감상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잘 정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풀어보기로~

라이프오브 파이 / 이안 감독 (2013년)

영화가 참 좋다고 추천을 받아 보게 되었다. 
다행히 기회가 되어 극장에서 3D로 보았다. 첫 장면의 동물원 3D가 너무 좋았다.
전반적인 영화의 비주얼인 CG와 3D 장면들은 놀라웠다. 
난 영화의 기술적인 측면보다 스토리를 더 얘기하고 싶다.

믿음과 의심에 대한 이야기.
종교에대한 의심을 묻자 대답한 파이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수많은 의심의 방이 있죠. 그러나 의심은 믿음을 견고하게 해줍니다"
영화를 보고난 후, 그 대사를 나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의심은 믿음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알게 해 줍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정확한 대사가 내가 기억하는 대사와 달랐다.
아무래도 내가 영화 전반적인 내용에 자의적으로 이렇게 기억 혹은 해석한 듯 하다.

삶을 지탱하는 힘.
그가 리차드 파커와 살아남게 된 과정을 보고,
삶을, 혹은 생을 지탱하는 힘이 무언지 깊이 생각했다.
이성인지, 믿음인지, 단지 동물적 욕구인지,, 복합적인 것이겠지.

마지막 장면에서 이게 단순한 '노인과바다'의 변주가 아니었네. 이게 뭔가..? 하는 울림이 있었다. 
영화를 본 직후, 스토리에 대해서 내 마음속에 작은 의심이 일었다.
하지만 영화를 같이 본 사람들에게 '혹시 뒷 얘기가 사실이 아닐까?'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고래 뛰노는 멋진 영상을 보고나서 그런 얘기 하는게 좀 분위기 깨는것 같아서..

그러고는 집에 와서 인터넷에서 영화평들을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만 여기 저기 의미를 갖다 붙이며,
'사실은 동물들 얘기는 뒷얘기의 메타포다!' 라는 식의 해석이 넘쳐났다.
그러다 뭐가 사실인지 아닌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파이의 캐릭터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는 자기 이름인 피신 (영어 pissing – 오줌싸다 – 발음이 비슷)을 파이(PI)라는 이름으로 바꿔 버린다.
무한대라는 그럴듯한 의미도 붙여서.

추한 현실을 다른 아름다운 의미가 있는 환타지로 바꾸는 그의 능력은 어쩌면 그때부터 있었던건 아닌지.

여기까지가 내가 영화를 보고난 느낌이었다. 
그리고 꼭 책을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참, 호기심 많은 난 영화보고 며칠 후에 욕조에 바나나를 띄워보았다. ㅡ.ㅡ 
바나나는 물에 뜨더라.

파이이야기 / 얀 마텔 (2001년)

원작을 읽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바다에서 살아나가는 이야기가 아주 길게 펼쳐졌다. 

기억에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있었다.

만새기라는 물고기가 죽을때 무지개 빛을 내는 것이나, 
거북이 사냥을 하는 장면들이 자세하게 나왔다.

중간에 파이가 갑자기 눈이 멀게 되기도 하고, 
바다 한가운데서 프랑스 요리사와 만나는 부분도 있었다.
이 부분은 의미를 잘 알 수 없는 대화, 알지 못하는 음식에 대한 묘사라 좀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그 많은 행동들이 리차드 파커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었고,
리차드 파커를 길들이는 과정도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책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라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사랑한다!" 터져 나온 그 말은 순수하고, 자유롭고, 무한했다. 내 가슴에서 감정이 넘쳐났다.
"정말로 사랑해. 사랑한다, 리처드 파커. 지금 네가 없다면 난 어째야 좋을지 모를거야.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 못 견뎠을거야. 희망이 없어서 죽을 거야. 
포기하지 마, 리처드 파커. 포기하면 안 돼. 내가 육지에 데려다줄게. 약속할게. 약속한다구!"

왠지 나도 같이 가슴이 막 벅차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삶에서 리차드 파커의 존재.
그리고 책을 다 읽고선 리차드 파커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어쩌면 리차드 파커는 우리 인생에서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지.

내 삶의 boundary 안에 있어 내가 끊임없이 만족시키고 먹여주어야 하는 것,
나와 밀접하여 버릴 수도 없는 것, 그러면서도 방심하면 내 존재를 위협하는 것, 
불안과 공포를 느끼면 나를 잠식해 버리는 것, 그래도 함께하는 과정이 나를 살리고 성장시키는 것,,

그것은 가족일 수도 있고, 일과 직장 상사일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
우리 인생의 리차드 파커..

책을 읽고 영화를 돌이켜 보니,

시나리오로 각색을 하면서,
위에 언급된 책에 나온 몇가지 중요한 부분이 누락된 것도 있지만,
책에 나오지 않았는데 영화에 가미된 부분들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래는 영화의 전개상 중요하지만 책에 나오지 않았던 부분들이다.

여자의 등장
여자의 등장으로 파이의 인생에서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의미를 더 부각시켰던 듯.

신부님의 등장
성수를 몰래 훔쳐 마시는 파이에게 신부님의 You must be Thirsty 라고 하며 자비를 베푼다.
이 에피소드로 파이는 더 천주교에 호감을 가지게 된다.
인터넷 해석보니 리차드파커 원래 이름이 Thirsty니까, "You must be thirsty"라는 대사로,
호랑이가 파이 자신인 것이 암시가 되었다는 재밌는 해석도 있더라.

프랑스 요리사와 첫 갈등
배의 식당에서 채식 때문에 프랑스 요리사와 갈등이 있었던 부분은 책에 없었다.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그렇게 무리있는 각색은 아니다. 적절하게 잘 각색된것 같다.
원작에 누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영화의 Visual을 활용해서 좋은 영화 한편이 나왔던 것 같다.
아카데미도 인정한 이안 감독의 대단한 능력 덕분!

그래도 고르라면 얀 마텔의 원작을 읽고 난 느낌이 좀더 좋다 ^^
리차드 파커에게 사랑한다고 크게 외친 고백 때문이 아닐까?

 

에세이, 회고록 독후감~

사랑을 생각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간만에 쥐스킨트의 책. 소설이 아니라 사랑에 관한 에세이였다.
쥐스킨트가 사랑을 얘기? 읽기 전에 걱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사랑은 없다한 쇼펜하우어보다는 덜 시니컬해서 다행.
토마스 만의 <베니스의 죽음> 실제 이야기가 나왔다.
안그래도 얼마전에 인터넷에서 토마스 만의 그 단편이 실제 모델이 있었다고 보았는데,
이 에세이를 읽다가 공교롭게도 그 이야기가 나와서 신기했다. 
그 가십 자체보다는 토마스만의 사랑에 빠진 심리에 더 촛점이 맞춰져 있긴 했지만.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오르페우스와 예수를 비교하는 대목도 재밌었다.
특히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본 이유가 흔히 이야기되는 '에우리디케 발목은 괜찮은지 보려고..' 가 아닌,
'에우리디케가 지금 내 노래는 듣고 있는거야?' 라는 이유로 설명되는 것이 참 웃겼다.
전반적으로 그냥저냥 읽기 편했다.

에곤쉴레를 회상하며 (아투어 뢰슬러)
미술 평론가 아투어 뢰슬러가 가까이서 지켜 보았던 에곤 쉴레를 회상하며 에피소드를 모아서 쓴 형식이었다. 
그의 생애 전반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에피소드들 자체가 꽤나 에곤쉴레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책의 저자인 아투어 뢰슬러에게도 참 고마웠다. (현재 에곤쉴레의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는 독자로써~)
친구로써 에곤쉴레를 가까이서 지켜 주었다. 간혹 쉴레의 깊은 얘기도 들어주고, 금전적인 지원도 꽤 한듯.

에곤쉴레의 진지하고도 순도 높은 예술혼과 자기 작품 세계에 대한 자부심, 그렇게 살다간 깡이 부러웠다.
그의 마지막 순간도 감동적이었다. 그의 아내를 죽기 직전까지 간호하다가 독감이 옮아 아내가 죽은지 3일 만에 그도 사망했다.
아내가 죽은 직후 쉴레가 오열하는 모습이 묘사되었는데 뢰슬러의 글 재주도 참 대단하다. 너무도 슬퍼하는게 꽉 느껴져서.
게다가 그렇게 깊은 속내와 크나큰 사랑을 가진 사람이 고작 스물 일곱의 나이였다니 그것또한 놀라운 사실임.

에곤쉴레에 대해서는 한번 더 다른 책을 읽어야 겠다. 좀더 알고 싶다. 그림들의 의미에 대해서도 더 깊이. 
쉴레 그림을 좋아하면 변태? 라는 물음에 '원빈도 에곤쉴레 좋아하는데?' 라는 식의 바보같은 대답은 하고 싶지 않다.

그의 그림들은 선이 살아있으며, 기묘하고도 기괴하지만 왠지 모르게 아름다운  느낌이다. 뭔가 으르르~ 거리는 느낌?
그의 부인 에디트 만큼은 다른 그림들과는 다르게 미화하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아래 2개 그림이 에디트쉴레)
매우 낭만적이기까지 하네..

 

요즘 책 좀 읽었어라~

1.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1948)

주인공은 요조라는 한 남자, 이 남자의 각기 다른 시기에 찍힌 3개의 사진을 묘사하는 첫 대목에서부터 놀랐다.
그 묘사가 너무도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고, 또한 상당히 해학적이었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킥킥거릴 정도..
이 해학적인점을 주목해야하는디, 이 요조라는 남자 또한 자신의 음산함을 '익살'로 포장하며 살아갔다는 것과 상통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데, 이야기 자체보다 만약 요조라는 남자의 심리가 작가의 그것과 일치한다면,
정말 참으로 이렇게도 어둡고도 냉소적이며, 또한 나르시즘적인 내면을 가지고 어떻게 온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갔을까도 싶다.
아니면 다른 사람이 본대로 요조는 사실은 정말 순수했다고 봐야할까? 정말 선한 사람이었나.. 정의 내리기가 참 복잡한 문제다.
애착과 애정이라곤 없고 (사랑과 행복이란 단어를, 말꺼내기 조차 저어함) 인간에 대한 큰 불신이 있는 그를 '인간적'이라고 할순 없다.

다자이 오사무는 평생 5번 자살 시도 끝에 5번째 자살로 사망한 작가.
평생 그렇게 자살이 따라다닐 만큼 인간 세상이 그렇게 싫었을까. 아니면 자기 자신이 싫었을까.
요조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시작은 '부끄러움 많은 인생을 보냈습니다' 였다.

2.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1998)

슬로베니아 처자, 베로니카가 약먹고 죽기로 결심하고 정말 약도 먹는다.
그런데 죽지는 못하고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에 있는 빌레트란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그 후 이야기이다.
왜 이 책도 '자살'과 정신병원을 다루고 있는 것인지 원, 일부러 이렇게 고른건 아닌데 말이다.
파울로 코엘료도 작가가 되기 전 정신병원에 감금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고.
참, 다자이 오사무도 약 중독으로 인해 정신 병원에 있었고, 다자이 오사무에게도 그것이 큰 충격이었단다.

베로니카는 매우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여자였다. 음,, 딱히 절망이라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기대나 희망이 없는 상태.
그런 그녀가 빌레트에서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지가 그려지는데, 조금은 억지스럽지만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평생 자살이 너무 하고 싶어, 웃으면서 죽어갔던 여자 아이의 이야기인 어느 프랑스 단편도 생각났다. 책 제목 찾아봐야지..!
 
3. 그로칼랭 (에밀아자르(aka로맹가리), 1974)

아~~ 그로칼랭. 역시 로맹 가리는 독하다. 으으..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번역자를 마구 욕했다. 아..무슨말을 하는거야, 의미 전달이 하나도 안돼! 번역을 이따구로 해놔! 하면서. 
그런데 읽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1인칭 화자인 쿠쟁씨가 소통장애가 있으신 분이었다.
쿠쟁씨가 들으면 화내겠지만, 감히 내가 그냥 '소통장애'라고 규정해 버렸다. 즉, 자기만의 언어로만 이야기하는 그런 분.
쿠쟁이 직접 그런 늬앙스로 언급한 부분도 있었다. '어디에서도 없었던 표현을 써야 할 것 같다'
아휴 그렇다고 그렇게 이상한 말들을 계속 내뱉으면 읽는 나는 너무 힘들다구!

홀로 집에서 자기 팔로 자신을 막 껴안기도 하면서,, 다른 사람과 얘기할 때는 어이없게 말이 꼬이기도 하고.
아 그런 쿠쟁씨가 측은하게 느껴지고도, 우습기도 했다.
완전 쓴 웃음 주는 블랙 코메디같다가도 갑자기 환타지같은 전환도 당황스럽다. 
그로칼랭은 쿠쟁이 기르는 비단뱀의 이름인데 '열렬한 포옹'이란 뜻의 프랑스어이다.
쿠쟁의 몸을 감는 비단뱀의 느낌이 꼭 열렬하게 포옹해 주는 느낌이라서라나? 아흐, 한마디로 -_-;;
첫 출판 당시에는 삭제되었던 <그로칼랭의 '생태학적' 결말>을 따로 (뭐 말하자면 director's cut) 실어 주어서 참 좋았다.
기억에 남는 좋았던 대목 한 구절
나는 어둠 속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항상 그렇지만, 마지막 몇분은 끝까지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쿠쟁은 드레퓌스를 찾아 다니다 포기한 마지막 순간, 벌써 애착을 가져버린 시들어가는 제비 꽃을 들고 있다)
로맹가리의 책이 으레 그렇 듯, 마지막 부분에서 무언가 마구 밀려드는 느낌이 있었다. 고아원과 개 이야기에서 갑자기 슬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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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들을 연달아 읽다보니 내용과 주인공들이 조금씩 비슷한 면이 있었다. 내가 느낀 그들을 정리하자면,
냉소적이고 음산함의 끝을 달리며 자신을 철저히 가장하는 요조, 무기력과 절망의 늪에 빠진 베로니카,
많이 외롭고, 그래서 더욱 소통에 문제가 있고, 어떻게 보면 기묘하다가도 어느 순간은 찌질하기까지 한 쿠쟁,
서로가 서로를 좀 닮기도 하고 – 기묘하고 찌질한 요조, 냉소적인 베로니카, 무기력한 쿠쟁이라 한다해도 무방 –
영혼은 고매하고 명징하나, 그런 점 때문에 타인과의 소통을 이 쪽에서 먼저 차단해 버리는 자폐기도 있고. 

근데 어디 명랑하고 유쾌한 내용을 담은 책 없나,, 책들이 왜 다 좀 그래.. 힝.
<신부님 우리 신부님> 시리즈를 읽어야 겠다. 이젠 명랑하고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필요해~

<에곤쉴레를 회상하며>도 독후감을 쓰려 했으나, 너무 길어진 나머지 다음 기회루다.
참고로, 위 세 책보다 그 에곤쉴레 평전이 더 많은 감동을 주었다고나.

 

읽어 보고 싶은 책 목록

읽어 보고 싶은 책 목록>>
천년의 그림여행 (스테파노 추피)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알레프 (파울로 코엘료)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진보집권플랜 (조국, 오연호)
진중권 책 (미학오디세이/미디어아트/아이콘)
로맹 가리 책 (그로칼랭/하늘의뿌리/새벽의약속/마지막숨결)
백년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셸 푸르스트)

읽어 보고 싶은 책이 겁나 쌓여있다!
우선 집에 있는 것 부터 다 읽고, 11월부터나 조금씩 사야겠다.

중간까지 읽은 책>>
에곤쉴레를 회상하며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이기적 유전자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
프랑스 문학 단편집

처음부터 읽을 책 >>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위대한 협상
모바일 디자인 전략
아웃사이더
아서클라크 단편집
마음 편하게 살아라

읽을만한 책좀 검색하다가,,
진지하게 프랑스 문학을 읽어볼까 싶어서 공쿠르상을 검색하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제목만 들어 봤는데 검색 결과에 러브레터 영화 이미지가 잔뜩 나와서 자세히 보니,,
러브레터에서 주인공들 매개체가 되는 책이 이책이었다고 하네.

재밌는 건 지금 읽고있는 에곤쉴레 책의 표지 그림(쉴레의 자화상)이 책 표지로 인기가 많았네.
인간실격은 부산에서 본 영화때문에 알게된 책이고. 

여튼 진득하게 책 좀 제대로 읽고 싶다. 너무 놀고만 있어. 흑.
당분간 영화는 그만 봐야겠다. 영화만 계속 보는 것은 너무 게으른 행동같다.

 


 

종이여자 – 기욤뮈소 / 7년의밤 – 정유정

[스포일러 있음!!!]

 

종이여자 – 기욤뮈소

 

<종이여자>는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를 읽을 때 처럼 마구 거슬리지는않았다. 이번에는 내용이 참신했다. 여전히 책장은 잘 넘어갔음. 3일만에 다 읽었다.


여주인공 빌리 캐릭터는 정말 매력이 있었다.

여전히 비슷한 구도의 친구들이 등장했지만, 중심이 되는 캐릭터들이 그 전에 읽었던 책들과는 조금은 달랐다. (종종 등장하는 나이가 많은 멘토같은 캐릭터가 이번에는 없었다.)

 

게다가 예전 책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운명으로 이어진 오래된 연인들이었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내용이라서 더 경쾌한 느낌. 아무래도 빌리 캐릭터 때문이겠지만.

그리고 기욤 뮈소가 주인공 톰보이드를 빌려 작가로써의 고백? 비슷한 것들을 풀어놓은 게 많았다. 책을 쓰는 것에 관한 과정이라던가, '난 예술가는 아니다. 그들과 급은 조금 다르다..' 라는 식의 자신의 작가로써의 포지셔닝 인정, 그런 것들이 솔직한 것 같아 좋았다.

 

그러나, 결말 부분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찡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마음인 즉슨!

아름다운 환타지비극으로 남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 (종이여자!), 그러나 억지로, 급작스럽게 처리된 해피앤딩에도 '왠지 다행이다' 생각되는 마음,, 이 두가지 마음이 마구 왔다갔다 하면서 '아 뭐야 짜증!!' 이러다가 '아 서로를 잊지 않고 사랑이 아름답게 결실을 맺어 기쁘다 ㅠㅠ' 의 사이에서 정말 혼란스러웠다;;; 이것도 능력이야 기욤뮈소님 ㅋㅋ

 

중간에 한국인과 이대가 등장해서 깜놀, 게다가 이대를 상세히 묘사한걸 보고 왠지 '와보지 않고서야' 하고 찾아보니 예전에 모모 아트홀(이름은 정확히 기억 안나는데 ECC에 들어선 영화관)에서 작가 사인회를 했었네!

기욤 뮈소의 이야기는 다소 통속적이긴 하나 재미는 있다. 읽고 있으면 머랄까.. '허세 쩔어!' 이런 마음? ㅋㅋ 그래도 그런 허세마저도 재미의 요소로 승화시켜주니 나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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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 정유정


책 펼치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엄청 두꺼웠다. 처음에 읽다가 오영제 캐릭터에 혐오감이 생겨 읽기 싫어져서 한동안 치워놨다가 뒷 이야기가 궁금해 다시 읽게 되었다. 

다양한 캐릭터들의 자식 내리사랑에 관한 방식들이 거의 주된 테마였다. 예쁘고 어린 소녀가 죽음을 맞게 되는 이야기부터 시작을 한다.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흥미롭지만, 가장 쳐주고(?) 싶은건 정유정 작가의 필력이다. 정확하게는 문장력이라고 해야하나, 표현력이라고 해야하나. '아, 한글 단어의 조합으로 이런 느낌을 주는 문장 표현도 가능하구나! 이래서 한국사람이 한국 작가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거구나~' 하며 한글의 표현력에 새삼 경이가 생길 정도였다.

 

그리고 영화화를 염두에 두었나 싶을 정도의 생생한 묘사력도 짱이었고. 특히 죽기 전 세령이의 모습과 세령호 마을의 후미진 숲속 길들이 눈앞에 떠오를만큼. 영화화 한다고 하는데 기대됨. 약간 '이끼'같은 분위기도 났고.

조금 불만이었던 건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너무 많이 왔다갔다 해서 가끔 집중력 떨어졌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스토리! 이것이 컨셉이었지만 나같은 단순한 리더에게는 째끔 과했다고나..

 

정유정 작가의 이전 작품인 '내 심장을 쏴라'도 여유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