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1948)
주인공은 요조라는 한 남자, 이 남자의 각기 다른 시기에 찍힌 3개의 사진을 묘사하는 첫 대목에서부터 놀랐다.
그 묘사가 너무도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고, 또한 상당히 해학적이었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킥킥거릴 정도..
이 해학적인점을 주목해야하는디, 이 요조라는 남자 또한 자신의 음산함을 '익살'로 포장하며 살아갔다는 것과 상통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데, 이야기 자체보다 만약 요조라는 남자의 심리가 작가의 그것과 일치한다면,
정말 참으로 이렇게도 어둡고도 냉소적이며, 또한 나르시즘적인 내면을 가지고 어떻게 온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갔을까도 싶다.
아니면 다른 사람이 본대로 요조는 사실은 정말 순수했다고 봐야할까? 정말 선한 사람이었나.. 정의 내리기가 참 복잡한 문제다.
애착과 애정이라곤 없고 (사랑과 행복이란 단어를, 말꺼내기 조차 저어함) 인간에 대한 큰 불신이 있는 그를 '인간적'이라고 할순 없다.
다자이 오사무는 평생 5번 자살 시도 끝에 5번째 자살로 사망한 작가.
평생 그렇게 자살이 따라다닐 만큼 인간 세상이 그렇게 싫었을까. 아니면 자기 자신이 싫었을까.
요조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시작은 '부끄러움 많은 인생을 보냈습니다' 였다.
2.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1998)
슬로베니아 처자, 베로니카가 약먹고 죽기로 결심하고 정말 약도 먹는다.
그런데 죽지는 못하고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에 있는 빌레트란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그 후 이야기이다.
왜 이 책도 '자살'과 정신병원을 다루고 있는 것인지 원, 일부러 이렇게 고른건 아닌데 말이다.
파울로 코엘료도 작가가 되기 전 정신병원에 감금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고.
참, 다자이 오사무도 약 중독으로 인해 정신 병원에 있었고, 다자이 오사무에게도 그것이 큰 충격이었단다.
베로니카는 매우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여자였다. 음,, 딱히 절망이라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기대나 희망이 없는 상태.
그런 그녀가 빌레트에서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지가 그려지는데, 조금은 억지스럽지만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평생 자살이 너무 하고 싶어, 웃으면서 죽어갔던 여자 아이의 이야기인 어느 프랑스 단편도 생각났다. 책 제목 찾아봐야지..!
3. 그로칼랭 (에밀아자르(aka로맹가리), 1974)
아~~ 그로칼랭. 역시 로맹 가리는 독하다. 으으..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번역자를 마구 욕했다. 아..무슨말을 하는거야, 의미 전달이 하나도 안돼! 번역을 이따구로 해놔! 하면서.
그런데 읽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1인칭 화자인 쿠쟁씨가 소통장애가 있으신 분이었다.
쿠쟁씨가 들으면 화내겠지만, 감히 내가 그냥 '소통장애'라고 규정해 버렸다. 즉, 자기만의 언어로만 이야기하는 그런 분.
쿠쟁이 직접 그런 늬앙스로 언급한 부분도 있었다. '어디에서도 없었던 표현을 써야 할 것 같다'
아휴 그렇다고 그렇게 이상한 말들을 계속 내뱉으면 읽는 나는 너무 힘들다구!
홀로 집에서 자기 팔로 자신을 막 껴안기도 하면서,, 다른 사람과 얘기할 때는 어이없게 말이 꼬이기도 하고.
아 그런 쿠쟁씨가 측은하게 느껴지고도, 우습기도 했다.
완전 쓴 웃음 주는 블랙 코메디같다가도 갑자기 환타지같은 전환도 당황스럽다.
그로칼랭은 쿠쟁이 기르는 비단뱀의 이름인데 '열렬한 포옹'이란 뜻의 프랑스어이다.
쿠쟁의 몸을 감는 비단뱀의 느낌이 꼭 열렬하게 포옹해 주는 느낌이라서라나? 아흐, 한마디로 -_-;;
첫 출판 당시에는 삭제되었던 <그로칼랭의 '생태학적' 결말>을 따로 (뭐 말하자면 director's cut) 실어 주어서 참 좋았다.
기억에 남는 좋았던 대목 한 구절
나는 어둠 속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항상 그렇지만, 마지막 몇분은 끝까지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쿠쟁은 드레퓌스를 찾아 다니다 포기한 마지막 순간, 벌써 애착을 가져버린 시들어가는 제비 꽃을 들고 있다)
로맹가리의 책이 으레 그렇 듯, 마지막 부분에서 무언가 마구 밀려드는 느낌이 있었다. 고아원과 개 이야기에서 갑자기 슬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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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들을 연달아 읽다보니 내용과 주인공들이 조금씩 비슷한 면이 있었다. 내가 느낀 그들을 정리하자면,
냉소적이고 음산함의 끝을 달리며 자신을 철저히 가장하는 요조, 무기력과 절망의 늪에 빠진 베로니카,
많이 외롭고, 그래서 더욱 소통에 문제가 있고, 어떻게 보면 기묘하다가도 어느 순간은 찌질하기까지 한 쿠쟁,
서로가 서로를 좀 닮기도 하고 – 기묘하고 찌질한 요조, 냉소적인 베로니카, 무기력한 쿠쟁이라 한다해도 무방 –
영혼은 고매하고 명징하나, 그런 점 때문에 타인과의 소통을 이 쪽에서 먼저 차단해 버리는 자폐기도 있고.
근데 어디 명랑하고 유쾌한 내용을 담은 책 없나,, 책들이 왜 다 좀 그래.. 힝.
<신부님 우리 신부님> 시리즈를 읽어야 겠다. 이젠 명랑하고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필요해~
<에곤쉴레를 회상하며>도 독후감을 쓰려 했으나, 너무 길어진 나머지 다음 기회루다.
참고로, 위 세 책보다 그 에곤쉴레 평전이 더 많은 감동을 주었다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