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준 인생수업이란 책을 읽었다. 뭐 특별한게 있을까 하고 읽었는데,
나름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남겨놓는다.
나는 관계의 마무리를 잘 하고 있었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의도적으로 죄의식’을 심어놓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였던가.
관계는 자신을 보는 문
사랑을 정의할 때 환상 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관계가 순수할 때, 그리고 다양한 경험들을 배움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관계는 결과적으로 자유롭게 참여하고 나누는 쪽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규칙과 환상을 고집하는 한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게 하십시오. 미래에 대한 그림과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환상, 계획이나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사랑은 생명을 갖습니다.
모든 관계가 평생 동안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50년 동안 지속되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6개월 만에 종말을 고하는 관계도 있습니다. 어느 한쪽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관계가 있는가하면, 살아있는 동안에 결말에 이르는 관계도 있습니다. 죽음을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떤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면 그 관계가 실패했다고 여깁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관계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배스와 난 사랑하는 사이였어요. 하지만 2년 전에 그 관계가 끝나버렸어요. 영원히 함께할 운명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제대로 된 관계를 맺는데 실패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한 달 전 쯤 나흘 연속으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배스 얘기를 하는 거였어요. 배스에게 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의 관계가 끝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배스를 불러내어 저녁 식사를 했어요. 저녁을 먹으면서 다시 만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어요. 그 대신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이번 관계가 다음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얘기를 나눴어요. 놀랍게도 그 일 이후 우리의 관계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성공적이었고 완벽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헤어졌다가 또다시 만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아직 관계가 끝나지 않았고 치유해야 할 상처들이 남아 있을 때 일어납니다. 하지만 때로 겉으로는 관계가 이미 끝났지만 마음속으로는 그것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만나게 됩니다. 삶에서는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마무리란 관계의 완성과 실패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로 잡는 일입니다.
관계에 실수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정해진 대로 일어납니다. 첫 만남에서부터 작별 인사까지,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관계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자신이 미리 갖고 있는 기준을 버릴 때, 누구를 얼마나 오래 사랑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도 해방될 수 있습니다. 신에게 선물 받은 위대한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이런 한계들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말라
헬렌과 미셸은 둘 다 50대 여성으로 20년 넘게 친구로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로 헬렌은 미셸에게 화가 났고, 4년 전부터 서로 거의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헬렌은 미셸의 이름을 듣기만해도 성을 냈습니다.
“난 지난 4년간 친구에게 주려고 산 생일 선물들을 아직도 지하실에 보관하고 있어요. 미셸이 날 위해 시간을 낼 때까지 선물을 주지 않을 거예요.”
둘 다 재혼을 하고부터 그들은 지금까지 명목상으로만 친구로 남게 되었습니다. 미셸이 먼저 재혼을 했습니다. 헬렌은 진심으로 축하했지만, 자꾸만 자신이 미셸에게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바로 그 즈음, 헬렌은 두 번째 남편을 만났고 두 친구는 이후 계속 소원하게 지냈습니다. 헬렌이 여러 차례 전화를 했지만, 그때마다 미셸은 시간을 내지 못했습니다. 헬렌은 “미셸, 네 생일 선물을 준비했어. 우리 한번 만나자.” 하고 말했지만, 두 사람은 결국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헬렌이 유방암에 걸렸습니다. 헬렌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때마다, 금이 가버린 미셸과의 우정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미셸을 위해 사 둔 그 생일 선물들을 모두 우편으로 보내 주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펄쩍 뛰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안 돼요. 난 지난 여러 해 동안 노력해 왔어요. 난 앞으로도 계속 미셸에게 전화해서 멋진 선물을 준비해 두었다고 얘기할 거예요.”
친구와의 불화가 죄의식 때문은 아닌지, 나는 화가 나 있는 헬렌에게 물었습니다.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죄의식 같은 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친구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하려는 건 아닌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당황하면서 되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내가 말했습니다.
“내 생각엔, 이유야 어찌 됐든 미셸은 당신을 만나지 않음으로써 당신과 친구 관계를 끝내거나, 아니면 최소한 방식을 바꾸려는 것 같군요. 하지만 당신은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해마다 더 비싼 생일 선물을 샀어요. 당신이 첫 해에 그런 행동을 한 건 이해가 가지만, 4년 동안 계속 그렇게 해온 이유가 뭐죠? 선물을 사 봤자 소용 없으리란 걸 알았을 텐데요.”
“난 그때마다 올해는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산 선물들이 어떤 식으로든 달라진 점이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해가 바뀔 때마다 점점 더 좋은 선물을 샀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혀 받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점점 더 멋진 선물을 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헬렌이 당황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러더니 화난 투로 불쑥 쏘아붙였습니다.
“당신은 이해 못해요. 나쁜 쪽은 미셸이에요. 만나려고 하지 않은 쪽은 바로 그 친구라구요.”
그 말을 받아 내가 말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당신이 친구를 위해 산 선물들은 그녀에게 죄의식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요? 당신은 점점 더 좋은 선물을 사면서, 미셸이 그 선물을 받았을 때 무엇을 느끼길 바랐나요?”
마침내 헬렌은 고개를 떨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정했습니다.
“나를 만나 주지 않은 것에 대해 미셸이 죄의식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그녀가 당신 목소리에서 당신의 그런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나요? 어쩌면 그래서 그 친구는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몰라요. 당신은 더 이상 진심으로 선물을 건네는 것이 아니에요. 모두가 죄의식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었어요.” (중략)
죄의식은 우리를 가장 어두운 내면에 묶어 둡니다. 그것은 우리를 나약함, 수치심, 냉정함과 연결합니다. 우리의 부정적인 부분이 그 죄의식을 먹고 자랍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역시 죄의식을 키우는 영양분입니다. 죄의식을 느낄 때 우리의 마음은 좁아지고 하찮은 생각들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수치심을 느낍니다. 이것을 치유하려면 활발히 행동하고, 그 감정을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합니다. 진정한 자아는 죄의식을 알지 못합니다. 진정한 자아는 이 세상의 죄의식을 초월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