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 –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The Pilgrimage) – 파울로 코엘료

 

그의 책을 세번째로 읽는데, 무심코 선택한 이 책이 그가 제일 처음 썼던 책이라고 한다. 파울로 코엘료는 1986년에 산티아고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 체험을 책으로 썼다. 나의 허영심 땜시,, 이 책을 읽는 기간이 매우 길었다. (한글 번역본과 영어 번역본을 오가며 거의 한달 넘게 읽은 듯..) 그냥 읽으면서 좋았거나 크게 와닿았던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몇 자 적어보고 싶다.

 

– 자연

이 책은 자극적이거나 혹은 상상력이 돋보이는 어떤 내러티브가 있는 스토리가 아니라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순례길을 가면서 경험했던, 느꼈던 것들을 쓴 내용이다. 이야기에 나오는 것은 몇명 없는 등장 인물과 길이 전부다. 그래서 그런지 자연에 대해서 많은 묘사가 있다. 산, 식물, 동물, 물, 땅, 비,, 내가 마치 같이 그 자연 속에 있는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참 좋았던 듯. 대학 때 밤에 교정에서 나뭇잎 소리 들었던 기억도 갑자기 나면서.

 

– 전승

이 순례 길을 안내해주는 가이드 '페트루스'가 있었다. 그가 마지막에 파울로에게 하는 이야기는 파울로가 느꼈던 것 처럼 나에게도 정말 큰 반전으로 다가왔다. 이 순례라는 것은 전통적인 exercise(의식)을 가이드가 순례자에게 가르쳐 주면서 길을 가는 과정이다.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는 그 전통을 한사람이 다른사람에게 전해준다. 이 '전승'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이나, 더 크게는 인류의 역사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것인지! 전승자가 되어 보아야지만 그 의식들의 진정한 가르침과 의미를 알게 된다는 페트루스의 말도 이해해 보고 싶다.

 

– 자만과 환상

사람은 살면서 자만하게 되거나 어떤 것에 대하여 환상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인생은 그렇게 관대하지 않아서 그런 것들을 깰 수 있을 때가 항상 온다. 파울로도 책의 중반이나 후반쯤에 종종 자신이 자만했었고, 환상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 깨달음

낙산사 계단 어귀에서 큰 돌덩이에 써진 글귀를 보았다. 작년에도 보고 올해도 가서 또 보게 되었던 그 글귀, <길위에서 길을 묻다>. 작년에 처음 그 글귀를 보았을 때 이게 왠 말장난같은 말이냐.. 하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그 글귀를 봤을 때는 조금 깊게 생각해 보려고 했다. 어쩌면 이 책에서 주었던 '깨달음'과도 맞닿는 의미가 있는듯 하다.

 

Life always teaches us more than the Road to Santiago does. But we don't have much faith in what life teaches us. (산티아고의 길보다 인생이 우리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생을 통해 배우는 것에 대해서 신념이 그리 크지 않다.) – 이 책에서 가장 마음속에 남는 글귀이다.

 

그렇게 찾고자 했던 칼을 찾아가면서, 또 그 칼의 비밀에 대한 깨달음도 참 좋았다.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인 Agape나 good fight는 100% 이해하지는 못했다.

 

– 전파 혹은 전달?

이 경험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고자 책을 쓴 것이려니. 그런데, 마지막 부분을 읽다보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 파울로의 표현에 따르자면 – '내 인생에서 가장 예기치 못한 이별의 순간'을 주었던 페트루스에게 '페트루스가 떠난 후에 경험했던 것과 느꼈던 것'을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 한다. '페트루스가 맞았다'라는 말이 참 많이 나왔다. '페트루스! 가르침을 주어 고마웠고,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라는 메시지가 아닐런지.

 

내 자신이 좀더 종교적이거나 영적이지 못하고, 경험치도 낮아서, 이 책의 내용을 모두 다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산티아고 순례길과 그 의식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된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한 순례길은 그 길이 있다고 하여 단순한 호기심과 허영심으로 가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서는 안될 것 같다. ^^

거울과 자화상,, 그리고 셀카의 오류?

교수대 위의 까치를 읽다가 너무 흥미로운 챕터를 발견했는데 가만히 읽다보니,
최근 스마트폰과 관련된 경험이 갑자기 떠올라서 두 개를 연관시키다보니 너무 재미있었고,
하여 이거.. 책 읽다 말고 포스팅 남긴다.
 
 
교수대 위의 까치 – 7. 사라진 주체
 
책의 일곱번째 챕터에서 화가와 자화상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정말 독특한 자화상 하나가 소개되었다.

 
요하네스 굼프 (Johannes Gump, 1626~?) 사망연대는 아래 그림들이 그려진 1846년 이후로만 추정.
즉, 이 화가가 그 때 살아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이 자화상들 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오스트리아 화가인데 알려진게 없고, 아래 그림들 이외에 다른 그림은 남겨지지 않았을거라고 한다.
 
 
같은 주제의 그림을 왜 두개나 그렸나.
그리고 이 구도는 정말 새롭다.
 
(2) 거울에 비친 나            (3) 그려지고 있는 나
             (1)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
 
 
그림A (위)
훨씬 고전적인 분위기이고, 전체적인 그림 형태를 원형으로 취하고 있다.
거울속의 화가와 캔버스속의 화가의 시선이 각기 다른 방향이다.
 
그림B (아래)
색채가 좀더 화려하게 쓰이고 개나 고양이 등 주변 묘사에도 충실했다.
그리고 좀더 가볍고 만화(?)적인 분위기. 거울속의 화가와 캔버스속의 화가의 시선이 같다.
 
두 그림 중 어떤 그림이 먼저 그려졌는지는 책에 나와 있지 않았다.
어떤 그림이 먼저 그려졌으며, 왜 사소하게 다른 비슷한 그림을 두번이나 그렸을까?
무얼 깨닫고? 아, 호기심 무한 자극이다.. 일단 호기심은 뒤로 하고 다음 얘기로.
 
자,, 그러면 저 그림에서 저 등을 돌린 화가가 이 쪽으로 등을 돌렸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거울&캔버스 속의 사람과 똑같은 모습의 사람이 서 있을까?
 
 
사진이 없었던 시대의 화가는 자화상을 그릴 때 거울을 보고 자신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고흐는 왼쪽 귀를 잘랐다고 한다.
 
즉, 굼프가 저 그림에서 뒤로 돌아 선다면 아마도 그의 앞머리는 얼굴의 왼쪽으로 넘어가 있겠지.
 
요하네스 굼프, 스무살에 저런 그림들을 그린 화가라니? 그의 성격을 이렇게 예상해 보았다.
아주 많이 사색적이고 예민했을것 같고, 고집이나 집요한 면이 있으면서도 위트가 있었을 것 같다.
 
 
 
스마트폰 전면 카메라로 찍는 셀카!
그럼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요즘 스마트폰 셀카 얘기를 해보려고.
안드로이드 폰이 진저브레드로 OS가 업그레이드 되면서 발생하는 민원이 있다.
(진저로 업글되면서 변경되고 인지된 feature였는지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셀카로 찍으면 좌우가 뒤바뀌어 저장이 되요!!'
오류가 아닌데도 상당히 많이 문의되는 사항이다. 실제로 포털에서 '진저 셀카 저장'을 검색해 보라.
 
셀카를 찍을 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거울을 볼때와 동일한 미러 이미지이다.
사람들은 이 미러 이미지가 실제 이미지와 같다고 헤깔려 하는 것이다.
찍은 후 저장되는 '좌우가 뒤바뀐' 이미지가 실제 이미지와 같은 이미지라구!!
 
사람들은 내가 화면을 통해 본 이미지와 다르게 저장되니 이것을 오류인줄 아는게지.
후면 카메라로 당신을 찍을 때와 동일한 이미지인 것이니 오류가 아니다.
 
거울에 비친 좌우가 바뀐 나의 모습은 '좌우가 완벽하게 대칭인 사람'이 아니고서는
실제로 다른사람들이 나를 보는 모습과 미묘하게 차이가 있는 모습일 것이다.
아,, 살면서 '실시간으로' 실제 나의 앞 모습을 볼 기회는 거의 없는건가?!  
(스마트폰 셀카 화면을 미러 이미지로 만들어주지 마세요.. 라고 하는 수 밖에..)
 
 
마지막으로 책에 나왔던 정말 웃긴 자화상 하나가 있어서. 너무도 진정성을 가진 그림일테지만 그냥 웃겨~
내 '쌩'눈으로 본 나의 모습. 눈을 가운데로 모아가며 얼굴을 움찍움찔 하며 코와 콧수염을 보았겠지? ㅋㅋ
물리학자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가 소개한 진정한 의미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약간은 지루하게 읽고 있던 차에 갑자기 맞딱드린 너무도 재미있는 그림들과 글을 보고선
한참을 이 주제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다 급기야 진저브레드 민원까지도 생각이 닿게 된. ㅋ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도 가끔 폰으로 찍은 내 사진들을 보다가,
쌍커풀이 생기려고 하는 눈이 왼쪽 눈인지 오른쪽 눈인지 헤깔릴 때가 있다. 바보같아.. -_-;
 
 

자기앞의생 – 에밀 아자르

에밀 아자르의 '자기앞의 생'을 다 마쳤는데, 눈물이 찔끔 났다. 
더로드 이후 책을 덮는 순간에 카타르시스를 주는 두번째 책. 
짓누르는 무게감이 느껴지고, 시각적으로 후각적으로,, 여러 감각을 자극하는 생생한 이야기, 
특히 처절하고 치열한 생의 끝자락에 대한 묘사가 대단하다.

좋은 구절이 많다. 권하고 싶은 책이다.

최근 읽은 책 5권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브리다 등)

1.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로맹 가리 외 단편 다수
10년 전에 친구가 준 책. 그 때 왠일인지 로맹가리의 '벽'만 읽었던 것 같다. 왜 그것만 읽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책장에서 꺼낸 김에 다른 단편들도 다 읽어봤는데 대부분 인상적인 이야기들인데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인걸 보니, 그때는 읽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대부분 좋다. 프랑스 작가들이 참 좋아진다. 

2. 빅 픽처 / 더글라스 케네디
책 표지가 인상적이었고,, 베스트셀러라서 궁금한 마음에 빌려 보았다. 음.. 연체료 엄청 많이 냈다. -_-; 중간까지 왜이리 더디게 읽히는지, 일주일 넘게 읽었다. 뒤로 갈수록 흥미 진진한데, 한번 더 얘기하지만 처음과 중간이 전개가 너무 더뎠다. 뒷 부분은 재미있음.

3.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 기욤 뮈소
얼마 전 포스팅에 욕 실컷했는데, 기욤 뮈소 신간 '종이 인형'은 읽어 보고 싶대? 
서점 갔을 때, '종이 인형'하고 오쿠다 히데오 '꿈의 도시'가 끌렸음. 
이 책들은 구매해서 보지는 않고 아마 빌려볼 듯 함~

4. 브리다 / 파울로 코엘료
소울 메이트에 대한 유래가 재미있었다. 소울 메이트는 자고로 사랑의 대상과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의 결론도 좋았고. '연금술사'도 내용은 딱히 기억이 안나는데 아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났다. 아무래도 파울로 코엘료가 내 취향인듯 하여 그의 소설집 (12권짜리)을 다 구매해 버렸다. 그것도 영어책.. ㅡ.ㅡ 지금 쩜 후회함. 그래두 공부하는 맘으로다 열심히 읽어야지. 

5.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 / 아베 야로
만화가 참.. 변태같아. -_-; 그런데도 재밌긴 했다. 
아베 야로의 '작가의 변'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자신은 기본적으로 '비관론자'라는 이야기가.. 그걸 읽고 만화를 보는데, 왜 이리 과거게 얽매이는 듯한 내용들만 많아 보이는지? 그래서 자신을 비관론자라고 하는가? 하긴, 심야식당도 좀 과거와 얽힌 이야기들이 많긴 하지. 

☆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단편들을 다 읽어 보아도 여전히 로맹가리의 '벽'이 제일 좋았다. 로맹 가리는 그 때 저 단편을 읽고 찾아 보았나,,, 암튼 당시 찾아본 바로, '에밀 아자르'라는 다른 이름으로 활동했다는 것을 대략 알게 됬다. 몇년 전, 일요일 아침에 즐겨보는 프로그램인 '서프라이즈'에서도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의 이야기에 대해서 한번 다룬 적이 있다. 지난 주에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낸 '자기앞의 생' 을 샀는데, 조만간 읽어 보아야지!

책 감상문은 길게 쓸 능력이 안되니, 앞으로 5권씩 읽을 때마다 이렇게 올려야겠다. (2/1~3/14) 
이글루스의 라이프로그가 5권 보이는게 기준이네.

읽을 책

교수대 위의 까치
순례자 (The pilgrimage)
7년의 밤
아서 클라크 단편집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아웃사이더
위대한협상
모바일디자인 전략
내가니앱이다

책 읽어야 할게 많다. 당분간 책은 안사야지.
시간내서 여름 끝나기 전에 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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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집에 오셔서 '소설책 다 내놔라.. 좀 읽자' 하셔서 
엄마가 읽으실만한 것 몇 권 빼서 보여드렸더니,
자기앞의 생과 춤추는 죽음 을 가져가셨다.
우잉, 어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들만 쏙 가져가시지 ㅋ

다른 소설책들은 담에 집으로 갖고 오라고 하시니 
갑자기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나 시집갈때 다시 다 줘야 돼!' 컥.. 몬소리야 ㅋ
옆에서 아부지 왈 '그래도 시집은 가려나 보네?' 이러심 –;

꺼내 놓은 책 중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이 책을 보더니 엄마가
'야 너 유죄다.. 유죄' 이러심 –;

두분 원투 펀치.. 췟.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 기욤 뮈소

책 제목에 끌려, 예쁜 책 표지에 끌려,, '아, 그래도 기욤 뮈소는 좀… 이 책은 괜찮으려나?'
하고 골랐던 책인데…

이거 뭐야? 욕하면서 계속 읽었다. 
'욕하면서도 보는 막장 드라마같다' 라고 계속 떠올랐다.

대놓고 영화들을 표절하고 (사랑의 블랙홀, 이프 온리)
자기 책들에 나온 캐릭터들이 그대로 나와. 새로운 캐릭터가, 새로운 이야기가 하나도 없어.

중간에 다른 책이나 다른 작가나, 속담의 유명한 구절들은 대체 왜 넣어 놓는건지?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에서도 그러더니, 
매번 챕터마다 앞장에 그렇게 해 놓는다. 그냥 그런 구절들은 자기 수첩에만 적어 놓지?
왜 그런 구절들로 먼저 세뇌 시키는거야. 

그리고, 영화나 음악의 인용은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적당히 하면 좋은데 너무 많다.
예를 들어 택시를 묘사할 때도 '로버트 드니로의 택시 드라이버란 영화에나 나올법한' 택시
이렇게 묘사를 한다. (택시 드라이버인지, 다른 영화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어쨌든 그런식..)
작가님은 영화깨나 보시고, 음악깨나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영화들 안 본 사람들, 그 음악들 모르는 사람들은 어쩌라고..?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파울로 코엘료의 '브리다'를 읽었는데,
주인공 여자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따위는 집어치워' 하는 대목이 있어서 쫌 놀랬다. ㅡ.ㅡ
참나, 또 파울로 코엘료를 안 읽은 사람들은 어쩌라구!!

이제 기욤 뮈소는 안 읽겠어!! 세편이나 읽었던 작가가 몇 없었는데. 
시간 낭비. 세상에는 읽어야 하는 다른 좋은 책들이 많다.
오늘 책 다 읽고, 읽으면서 쌓였던 분통이 터져서. 쩝..

욕하려면 읽지마, 취향의 차이 아냐? 재밌게 읽었으면서? 감성의 부족.. 이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난 시간을 들여 그래도 끝까지 다 읽었으니 욕할 권리는 있다구.

이랬다가도 망각하고 그 예쁜 표지에 끌려서,
달달한, 통속적인,, 그런 것들을 기대하고 또 한권 집어 들지도 모르지.
책 표지 너무 예쁘게 만들지 말자.

참, 근데, 브리다 책 표지는 너무 혐오스럽다. 머리카락 때문에 좀 무섭다고 해야하나.
책 표지 보기 싫어서 책을 덮을 수가 없다. 
브리다는 이야기 흘러가는 게 참 좋아서 책을 덮은 적이 별로 없었지만.

심야식당 – 아베 야로

책 좋아하는 미식가 친구가 강추해서 심야식당(深夜食堂)을 보았다. 
아, 진짜 재밌게 읽었다!

다만 컬러로 되어 있어야 하는 부분들이 흑백인쇄 되어 있었던 것이 아쉬웠는데 
마침 이미지를 찾다보니 저런 이미지가 있네~

처음에는 '이 만화가는 음식만 공들이고, 사람들은 너무 성의 없이 그리는거 아니야' 했다.
계속 읽다보니 성의 없는 건 아니었네, 인물들이 다들 나름 특징이 있었다. 

이 만화를 보면서 내가 느낀 몇 가지 재미..
1. 혈육 관계의 사람들은 잘 살펴보면 기가 막히게도 닮게 그린다. 유전자의 신비~
2. 옴니버스 형태인데, 다른 에피의 등장 인물들이 식당의 주변인들로 배치된다. 
보면서, '아 저사람 이야기는 뭐였더라' 하며 상기해 보는 재미가 있다.
3. 천하장사 소세지, 김, 명란젓 등 소소한 단품 음식도 많이 등장한다. 
그런 소재들이 나올 때마다 바로 나가서 사먹고 싶었다..
– 나에게도 천하장사 소세지 이야기가 있긴 한데.

정말 나도 같이 앉아서 먹고싶다! 했던 이 장면.
크리스마스 이브날 심야 식당에 둘러 앉아서 모두 조용히 게 먹던 장면이다. 대게찜 먹고팠다..
그러고보니 이 장면은 음식만 차려주는 마스터가 함께 먹던 장면이네. ^^

 

12시부터 7시까지 운영하는 이런 식당 우리 동네에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이제 심야식당 드라마를 볼 차례. 보면서 얼마나 괴로울까. 흑.

참,, 간만에 음식과 관련된 만화를 보고 있자니 생각나는 책이 하나 있었는데,,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유일하게 읽은 무라카미 류의 책이네.
조만간 다시 읽어 보아야 겠음. 

아무래도 요즘 나에게는 '먹는게 남는거' 라는 신조가 생긴 듯해. ㅡ.ㅡ

춤추는 죽음 – 진중권


여름에 진중권이 쓴 책이라며 '춤추는 죽음'을 소개받았다.
제목이 뭐 저래.. 하며 그냥 흘려 들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책을 주문했는데, 너무 재미있는 책이었다.
진중권씨가 쓴 책은 처음 읽어보았는데, 이 분은 정말 미학을 공부하시고, 그 설을 푸시는 천직을 가지신 듯.

몇 가지 중요한 테마와 용어
<3인의 생자과 3인의 사자>테마에서 본 죽음의 3 단계
죽음을 항상 생각하는 <메멘토 모리>
마카브르, 바니타스, 트란지 등으로 이야기 되는 죽음의 모습 
<아르스 모리엔디> 테마에서 보는 칠거지악 (천사와 악마의 싸움, 흥미로운 이야기임)
죽음 자체가 의인화 되어서 생자와 손을 잡고 춤을 추는 테마인 <춤추는 죽음>
젊은 여자와 죽음(트란지)이 한 그림 안에 있는 에로스와 타나토스
예술가들의 창조적 우울함 <멜랑콜리>
스페인, 프랑스의 역사적인 흐름에 따른 <고야>의 모순

책은 총 두 권으로 되어있다. 
시대순으로 점점 현대로 오면서 서양 미술에 나타난 죽음의 미학을 이야기 해 준다.
1권은 종교적인 주제를 많이 다루었고, 2권은 인간의 내면, 인간성 등의 이야기가 많았다.

1권이 전반적으로 하나의 주제로 연결이 잘 되고, 그래서인지 좀더 서사적인 느낌이 강했던 탓에,
근대로 오면서 그림 하나 하나를 가지고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풀었던 2권보다는 진도가 잘나갔다.
2권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은 떼어놓고 보면 다 재미는 있다.

성자들의 순교 장면이나 대학살 등의 장면을 그린 그림들에서는, 
뭣도 모르고 읽었는데 읽으면서 고통(?)스러웠던 <타인의 고통>이란 책이 생각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그림들을 찾아서 스크랩해 놓아야 겠다. 그림들 보기
그리고 진중권씨가 쓴 미술 관련된 책을 좀 읽어 보아야 겠다. 
친구가 추천한 <교수대 위의 까치>가 일단 1순위.

책 카테고리

예전, 티비에서 <세계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 100인>이라는 주제로, 그 100인에 순위를 매겨서 100등부터 1등까지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 물론 해당 방송국(미국인듯 함)의 다분히 서양인들의 관점에서만 본, 객관적이지 않은 순위일지도 모르겠으나.

옆에 계신 분은 그 다큐에서 1등에 오르신 분이다. 바로 인쇄술을 발명하신 구텐베르그 이다. 그의 인쇄술이 세계 '최초'의 인쇄술이 아니란 점은 우리가 익히 학창 시절 많이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의 업적은 인쇄술의 혁신과 대중화에 있었다고 한다. 자세히 보기

이렇게 길게 얘기는 꺼냈지만, 게으른 천성 때문인지, 이과 기질(변명!) 때문인지, 난 책을 많이는 안 읽는다. 1년에 겨우 스무권 정도 읽을까? ㅠ.ㅠ (그래서 괜히 만들었나 싶은 책 카테고리, 안습인,, 그냥 독후감 정도 되겠다..)

한 친구가 나더러 책을 안 읽는다며, 특히 '시'를 안 읽는다며 핀잔을 줬다. 헉.. 살기 바쁜데 시까지 읽어야 합니까? 그래도 반성은 좀 됬다. '우린 이미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충분히 텍스트를 많이 접하고 있다고!' 라고 변명을 해보지만 그래도 책은 좀 읽어야겠지?

안 읽는 책이라도 그나마 읽는 건 미술책, IT관련, 소설, 단편 정도이다. 
게다가 호흡이 긴 장편들은 왜 이리 죄다 읽다 말게 되는지, 
감히 도전한 '대망', '사구', '영웅문',, 대부분 1/4도 못 읽고 그만 두었다.

이제는 클래식도 들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차차 드는 것처럼, 
읽고 싶은 소설, 단편만 읽지 말고, 읽어야 하는 책들을 진지하게 읽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의 독서 정리..

좋아하는(혹은 충격적인) 단편 
로맹 가리 – 벽
안톤 체홉 – 굴
성석제 – 첫사랑
레이먼드 카버 –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
파크리크 쥐스킨트 – 깊이에의 강요

책이 나오면 꼭 보게 되는 좋아하는 작가/책
파트리크 쥐스킨트, 베르나르 베르베르, 
SF단편선/이상 문학상 (단편이라..-_-)

정서가 안 맞는것 같은데도 책은 더 읽어 보고 싶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기욤 뮈소

이 분들의 저서는 모두 명서라고 하니 앞으로 꼭 진지하게 읽어 보겠슴
데일 카네기, 콜린 윌슨, 수잔 손택, 피터 드러커, 칼 폴라니, 한나 아렌트

잘 모르지만 관심이 가는 작가들
아이작 아시모프, 안톤 체홉, 레이먼드 카버,
JRR 톨킨, 댄 브라운, 코맥 맥카시, 
파울로 코엘료, 주제 사라마구, 오쿠다 히데오
 

벽 – 로맹 가리

벽(璧) – 성탄절을 위한 콩트

내 친구 레이 박사는 영국의 많은 유명인사들이 의젓하게 모여서 지내온 부들즈 클럽의 저 기분 좋게 낡은 안락의자 하나를 골라 내 앞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온기가 기분 좋게 느껴질 만큼 불 가에서 적당하게 떨어져 앉아 있었다.

그래 아무것도 생각 안나요? 하고 그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나에게 물었다. 아무것도 생각 안 나요. 보름 전부터 나는 꼭 벽에 부딪친 기분이라니까요.

내가 이 옛 친구를 찾아온 것은 활력과 낙천적인 기분과 정신의 집중력을 자극시켜준다는 저 새로운 기적의 약을 한 가지 처방해 달라고 부탁하려는 의도에서 였다. 십 이월달이 가까워오고 있었고 나는 유명한 청소년 신문의 편집국장에게 성탄절 콩트 한 편을 -나의 청소년 독자들이 내게 마땅히 기대하게 마련인 건전하고 참한 이야기 하나를- 써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

성탄절이 다가올 떄면 언제나 참하고 재미있고 달콤한 이야기가 하나씩 생각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밤이 길어지고 상점의 진열장에 장난감들이 잔뜩 쌓일 때면 그런 이야기는 아주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올랐어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영감이 아주 내게서 떠나버린 느낌이라구요. 나는 벽에 부딪친 거예요.

하고 나는 풀이 죽은 기분으로 그에게 설명했다. 그 훌륭한 개업의의 두 눈이 꿈에 잠긴 듯한 빛을 띠었다.

아, 그렇다면 당신이야말로 아주 멋진 테마를 찾아낸 셈인데요… 어째서요?

벽이라…나는 당신에게 약 처방은 해주지 않겠습니다. 나는 부들즈 클럽에서 개업한 의사가 아니니까. 더욱이 그 돼먹지 못한 약이 필요하다면 병원으로 오세요. 값은 몇푼 되지 않아요. 그러나 당신에게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 수는 있어요. 그 주제가 바로 어떤 벽인데.아니, 그 벽이라고 해야 마땅하겠지요. 

직접적인 의미와 동시에 상징적인 의미를 다 가진 벽 말예요. 우정과 따뜻한 체온과 신기한 일에 대한 거의 견딜 수 없는 욕구로 사람들의 가슴이 죄어드는 섣달 그믐날의 어느 싸늘한 밤에 일어난 일이지요. 그 이야기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거지요. 나는 풋나기 의사 시절에 스코틀랜드 야드 소속의 법의로 일했습니다. 그러니 한밤중에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나를 침대에서 끌어내 가지고는 다시는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된 저 가련한 작자들을 검사해 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흔히 있었지요. 바로 이렇게 해서 어느 십이월달의 그 기분 나쁘게 노란 꼭두새벽에 이런 방면이라면 런던의 새벽이 극치지요- 나는 얼 코트의 저 끔찍한 어느 사글세 집에 가서 사망 진단을 하도록 호출을 받았답니다. 얼 코트라면 그 쓸쓸하고 추악한 모습을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내 앞에는 어떤 젊은 대학생의 시체가 놓여 있었습니다. 약 이십세 가량 된 그 젊은이는 바로 그날 밤에, 가스통 속에 실링화 동전을 몇 개씩 집어넣어야 비로소 난방이 되는 그 비참한 어느 방안에서 목을 매고 자살을 한 겁니다. 나는 진단서를 쓰기 위하여 그 싸늘한 방안의 탁자 앞에 가 앉다가 신경질적으로 휘갈겨 글을 써놓은 몇장의 종이 위에 눈길이 갔지요. 

무심코 거기에 눈길을 던졌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읽기 시작했답니다. 그 불쌍한 청년은 거기다가 자기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설명해 놓은 겁니다. 여러모로 보아 그는 고독을 견디지 못해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생각되더군요. 그에게 는 가족도 친구도 돈도 없었는데 성탄절이 되었으니 그저 온통 그리운 것은 따뜻한 손길, 사랑, 행복.그런 거였지요. 

바로 여기서 이야기는 점입가경, se corser 프랑스말로는 이렇게 말하지요. 아마?- 이 됩니다. 그 옆방에는 어떤 처녀가 살고 있었답니다. 그는 여자를 알지는 못했지만 종종 층계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 천사같은 아름다음-이런 표현을 보면 이 청년이 매우 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에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청년이 쓸쓸함과 절망과 싸우며 몸부림치고 있는 바로 그때 벽을 통해서 옆방으로부터 무슨 소리가 들렸던 거예요. 뭔가 삐걱거리는 소리, 한숨소리 같은 것이었는데 그의 편지 속에는 특징적인 것이라고 지적되어 있고 그것이 정확하게 어떤 성질의 것인지 알아차리기가 너무나 쉬운 그런 소리였다는 겁니다. 그 소리는 청년이 편지를 쓰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하여 들렸을 가능성이 짙어요. 왜냐하면 이 친구는 마치 분노와 멸시를 통해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것을 자세하게 묘사했고 그의 글씨에는 매우 흥분한 정신상태의 흔적이 있으니깐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영국 청년치고는 그 편지가 상당히 대담하고 또 분노와 절망감이 깃든 아이러니를 통해서 그는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묘사를 했답니다. 그는 적어도 한 시간 동안이나 문장 그대로 관능의 헐떡임 소리를 들었으며 내가 여기서 구태여 자세한 묘사까지는 않겠습니다만 침대가 삐걱거리고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편지에 쓰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벽에다 귀를 바싹 갖다 붙이고서 그런 종류의 추잡한 몸부림소리에 귀를 기울인 경험이 있지요.

천사같은 옆방 여자의 관능적인 신음소리는 특히 그가 처하고 있었던 고독과 절망과 모든 것이 역겹게 느껴지는 상태에서는 여간 가슴 쓰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남몰래 그 여자에게 연정을 느끼고 있었던 터라고 고백하고 있으니까요. 그 여자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는 감히 말도 걸어보지 못했다고 그는 썼어요. 

그는 내 가슴을 뒤집어 놓은 듯하고 다시는 상대하고 싶지 않은 그 추악한 세계에 대하여,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그 나이의 영국인이면 흔히 품을 수 있는 쓰디쓴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요컨대 틀림없이 과민하고 매우 순수하며 더할 수 없이 고독하고 애정의 결핍으로 가슴 저리는 그 청년의 머릿속에서, 자기는 소심해서 감히 말도 못 걸었던 그 신비한 찬사, 그런데 지금은 벽을 통하여 당신도 충분히 알만한 형태로 어지간히도 속세의 냄새가 나는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그 천사에 대하여 어떤 생각이 오갔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을겁니다. 그래서 그는 커튼 줄을 뜯어내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그 행동을 저질렀던 겁니다. 나는 그 종이에 써진 글을 다 읽고 나서 진단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기 전에 나는 잠시 동안 귀를 기울여 보았습니다. 그러나 벽 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사랑의 몸부림이 끝난 지 오래되었고 그에 뒤이어 기분 좋은 잠이 그들에게 찾아온 모양이었어요. 인간의 본성에는 그처럼 한계가 있는 법이 거든요. 나는 만년필을 주머니에 꽂아넣고 손가방을 챙겨 들었습니다 나는 그 가방을 프랑스말로 뫼랑빌(시내에서 죽다라는 뜻의 조어:역자)이라고 부르지요.

그리고 경찰관과 자다가 깨어나서 아주 기분이 안 좋은 상태인 집주인 여자와 함께 밖으로 나오려다가 갑자기-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어떤 호기심이 동하는 거예요. 물론 그럴싸하고 아주 알맞은 핑계를 찾는 것은 어렵지가 않았어요. 결국 따지고 보면 그 처녀와 그의 쾌락의 상대자는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그 방과 겨우 얄팍한 충분히 그렇다고 짐작할 수 있지 않아요?- 벽 하나로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어요. 그러니 어쩌면 그들에게서 들어볼 만한 무슨 말이, 추가함 직한 무언가가 새로운 단서 같은 것 말이에요-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내 행동의 주된 동기는 어떤 종류의 호기심 불건전하달까 시니컬하달까 하여간 좋으신 대로- 이었다는 사실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래 나는 나직한 비명과 한숨 소리를 냄으로써 그토록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그 천사같은 존재에게 잠시 길을 던져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던 겁니다. 요컨대 나는 문에 노크를 했던 겁니다. 아무 대답이 없더군요. 아마 공모자가 아직도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불을 뒤집어쓰고 어쩔 줄 몰라하는 두 남녀를 눈으로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어깨를 으쓱하고 그냥 밑으로 내려가려 하는데 집주인 여자가 두세 번 문을 두드리면서 미스 존스! 미스 존스!하고 불러 본 다음 열쇠뭉치를 찾아 들고서 문을 열었어요. 깜짝 놀란 목소리가 들리는가싶더니 집주인 여자가 말이 아닌 얼굴이 되어 가지고 방 밖으로 튀어나오는 거예요. 내가 들어가서 커튼을 활짝 잡아당겨 열었습니다. 눈길을 침대 위로 흘끗 던져보기만 해도 사태는 짐작할 만했어요. 벽을 통해 들려오는 바람에 그 절망적인 행동을 저지르게 했던 그 신음소리와 경련적인 비명과 한숨소리가 어떤 성질의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그 젊은 대학생은 완전히 오해를 한 것이었어요. 베개 위에는 비소 음독으로 인한 그 모든 고통과 흔적으로도 그 어여쁜 모습만은 지워지지 않은 금발의 머리가 얹혀 있었습니다. 그 처녀는 벌써 사망한 지 여러 시간된 듯했고 죽기 전에 매우 오랫동안 몸부림친 것이 분명했습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편지로 미루어 보아 자살의 동기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대강만 보아도 그건 고독..그리고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싫증, 그 중에서도 급성이더구먼요.

레이 박사는 입을 다물고 정다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건너다 보았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앉아 있던 안락의자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뭔가 항의하는 말이 입 끝에 맴돌기만 할 뿐 몸이 굳어진 채 꼼짝도 못하고 가만 서 있었다.

그래요. 벽이지요. 하고 의사는 몽상에 잠긴 듯 중얼거렸다. 이만하면 성탄절 콩트로서 흥미를 끌 만한 주제이고 제목도 이미 다 정해진 셈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바야흐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신비의 계절이 오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