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 (The Pilgrimage) – 파울로 코엘료
그의 책을 세번째로 읽는데, 무심코 선택한 이 책이 그가 제일 처음 썼던 책이라고 한다. 파울로 코엘료는 1986년에 산티아고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 체험을 책으로 썼다. 나의 허영심 땜시,, 이 책을 읽는 기간이 매우 길었다. (한글 번역본과 영어 번역본을 오가며 거의 한달 넘게 읽은 듯..) 그냥 읽으면서 좋았거나 크게 와닿았던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몇 자 적어보고 싶다.
– 자연
이 책은 자극적이거나 혹은 상상력이 돋보이는 어떤 내러티브가 있는 스토리가 아니라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순례길을 가면서 경험했던, 느꼈던 것들을 쓴 내용이다. 이야기에 나오는 것은 몇명 없는 등장 인물과 길이 전부다. 그래서 그런지 자연에 대해서 많은 묘사가 있다. 산, 식물, 동물, 물, 땅, 비,, 내가 마치 같이 그 자연 속에 있는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참 좋았던 듯. 대학 때 밤에 교정에서 나뭇잎 소리 들었던 기억도 갑자기 나면서.
– 전승
이 순례 길을 안내해주는 가이드 '페트루스'가 있었다. 그가 마지막에 파울로에게 하는 이야기는 파울로가 느꼈던 것 처럼 나에게도 정말 큰 반전으로 다가왔다. 이 순례라는 것은 전통적인 exercise(의식)을 가이드가 순례자에게 가르쳐 주면서 길을 가는 과정이다.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는 그 전통을 한사람이 다른사람에게 전해준다. 이 '전승'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이나, 더 크게는 인류의 역사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것인지! 전승자가 되어 보아야지만 그 의식들의 진정한 가르침과 의미를 알게 된다는 페트루스의 말도 이해해 보고 싶다.
– 자만과 환상
사람은 살면서 자만하게 되거나 어떤 것에 대하여 환상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인생은 그렇게 관대하지 않아서 그런 것들을 깰 수 있을 때가 항상 온다. 파울로도 책의 중반이나 후반쯤에 종종 자신이 자만했었고, 환상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 깨달음
낙산사 계단 어귀에서 큰 돌덩이에 써진 글귀를 보았다. 작년에도 보고 올해도 가서 또 보게 되었던 그 글귀, <길위에서 길을 묻다>. 작년에 처음 그 글귀를 보았을 때 이게 왠 말장난같은 말이냐.. 하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그 글귀를 봤을 때는 조금 깊게 생각해 보려고 했다. 어쩌면 이 책에서 주었던 '깨달음'과도 맞닿는 의미가 있는듯 하다.
Life always teaches us more than the Road to Santiago does. But we don't have much faith in what life teaches us. (산티아고의 길보다 인생이 우리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생을 통해 배우는 것에 대해서 신념이 그리 크지 않다.) – 이 책에서 가장 마음속에 남는 글귀이다.
그렇게 찾고자 했던 칼을 찾아가면서, 또 그 칼의 비밀에 대한 깨달음도 참 좋았다.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인 Agape나 good fight는 100% 이해하지는 못했다.
– 전파 혹은 전달?
이 경험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고자 책을 쓴 것이려니. 그런데, 마지막 부분을 읽다보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 파울로의 표현에 따르자면 – '내 인생에서 가장 예기치 못한 이별의 순간'을 주었던 페트루스에게 '페트루스가 떠난 후에 경험했던 것과 느꼈던 것'을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 한다. '페트루스가 맞았다'라는 말이 참 많이 나왔다. '페트루스! 가르침을 주어 고마웠고,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라는 메시지가 아닐런지.
내 자신이 좀더 종교적이거나 영적이지 못하고, 경험치도 낮아서, 이 책의 내용을 모두 다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산티아고 순례길과 그 의식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된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한 순례길은 그 길이 있다고 하여 단순한 호기심과 허영심으로 가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서는 안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