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기다릴 수 있습니까? 라는 영화의 홍보 문구에 끌려서 이 영화를 보았다.
지금 딱히 원하는 소원이 없다는 알리시아가 왠지 공감이 갔다. 흥미 진진하게 잘 보고 있었는데, 그렇게 당당했던 알리시아가 갑자기 정령에게 비는 소원 때문에 좀 놀래면서 챙피하고 당황스럽고 그랬다. 그리고 저걸 어떻게 소원으로 빌수가 있지? 그랬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느꼈다. 그게 곧 사랑을 대하는 나의 실제적인 감정인 듯 하다. 내가 이렇게 당황스럽고 챙피하고 숨고 싶고 하는 것이 사실은 아직도 그것에 대해서 백퍼 열려있지는 않은 마음인 것이겠지.
1. 왕자를 사랑한 여자 (Power)
그 여자는 미래의 최고 권력을 가진 왕자를 사랑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권력을 공고하게 해주는 ‘아이의 잉태’에 대한 것을 소원으로 빌었는지도 모른다. 이 여자를 보니 얼마 전 잠깐 접했던 레드필의 개념이 떠올랐다. 자세히는 몰라.
2.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을 사랑하게 된 왕자 (Healing)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서로 힐링이 되는 관계. 상처가 매우 깊은 사람에게는 동성/이성, 나이의 고저를 떠나 힐링만으로도 사랑이 싹틀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3. 지금 이 순간 내 눈에서 거슬리는 것은 썩 꺼져 (Rejection)
넘넘 과한 뚱땡이 여자가 비는 소원은 ‘날씬하고 아름다워 지게 해주세요’ 인줄 알았다. 나는 정말 너무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무척이나 무겁고 힘겨워 보이는 알몸의 여자가 비는 소원이 ‘너는 지금 매우 거슬리니까 썩 꺼져’ 라는 류의 소원이었다. 이 부분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 빅빅 뚱땡이 여자는 지금 그녀의 모습과 상황에 만족하는 것이었고 그냥 내 눈앞에 거슬리는 이 녀석만 치우고 싶은 것이었다.
4. 너무나 갈망하게 되는 지적 호기심과 허영심 (Intelligence)
제피르는 여기 나온 몇 명의 여인 중 가장 갈망의 상태가 심한 것처럼 보였다.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싶고 그걸 토대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싶은 갈망.. 멋진 갈망이지만 또한 영원히 채울 수 없기에 너무 괴로운 갈망이었다. 그래서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볼 수 없었다. 커리어의 성공을 바라는 여자들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제피르도 많이 이해가 갔다.
5. 사랑은 소원이 될 수 없어. (Love is not a wish)
(스포일러) 알리시아가 빈 소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나를 사랑해 줘 / 2. 제발 네가 말을 할 수 있게 해 줘 / 3. 너를 자유롭게 하고 너의 세계로 가.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소원이라고 빌 수 있는 것은 이 세 개가 다가 아닌가.. 그리고 이것은 알리시아처럼 정말 성숙하고 깨어있는 인간들 만이 빌 수 있는 소원이다.
그들의 스토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나를 사랑해 줬으면 좋겠고 너와 항상 대화할 수 있기를 원해,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너의 아이덴티티를 버리게 하고 속박하고 괴롭게 하는 것이라면 너를 자유롭게 풀어줄께, 너의 세계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