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10/26)

그라운드 시소 성수에서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을 보았다. (/w 쏙언니)

예전부터 기대한 사진전이었는데 기대한 만큼 좋았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보았는데, 듣기를 잘했다. 배경 사운드와 설명을 들으며 사진들을 관람하니 마치 그녀의 인생을 다룬 한편의 다큐 영화를 보고 온 느낌이었다. 영감을 굉장히 많이 받은 전시회였다.

그녀의 사진전을 보니 과연 평생의 직업이라는게 뭘까 생각이 들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 보모로 경제 활동을 하면서 살았다. 그렇게 번 돈으로 필름과 사진기를 사서 평생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자유롭게 찍은 사진들이 그녀의 사후에 온라인 SNS를 통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렇게 위대한 사진 작가가 되었다.

그런데 그 직업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유명 사진작가와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라는 두 직업의 가치에 대하여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생전에 유명한 사진 작가가 못 되었다고 그녀가 불행했을까? 사진으로, 녹음으로, 영상으로 일상들을 기록하고 신문을 스크랩하고 이런 수집광적인 취미가 고독했던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었을 것 같다.

그리고, 비비안 마이어는 타고난 저널리스트 같았다. 의외로 그러한 점을 그녀의 녹음 파일을 들으면서 느꼈다. 치매에 걸린 이웃 할머니와 대화를 하는 녹음 파일을 들었다. 끈질기게 그 할머니에게 질문을 이해시켜서 끝내 할머니로부터 원하는 대답을 얻어냈다.

독립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이지적인 얼굴과 커트 머리, 180에 가까운 큰 키, 편하거나 멋진 패션 감각, 사물과 인간을 바라보는 예술적 앵글에 대한 열정, 위트와 유머러스함, 어린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순수함.. 그녀는 참 유니크한 사람이었네.

예술로써의 사진의 시대는 갔다고 한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폰에 디카를 장착하고 있어서 누구든 이 세상의 순간들을 언제든지 포착할 수 있다. 또한 SNS가 발달해서 예쁘고 멋진 일상들이 사진으로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사실 지금이 그런 시대이기에 비비안 마이어의 일상의 순간 포착들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당시의 그 어떤 누구도 이렇게 15만장 분량의 일상 사진들을 남기지는 않았기에.

그녀의 거주지였던 뉴욕과 시카고, 어머니의 고향이었던 프랑스, 혼자 하는 해외 여행이었던 동남아 등지에서 찍은 15만장의 사진들 중 아직 인화되지 못한 사진들이 많다고 한다. 또 몇 년이 지나, 새롭게 인화된 그녀의 사진들이 공개될 날을 기다려야 겠다. 사진과 예술에 대한 그녀의 지속적이고 포기하지 않는 열정을 한껏 느꼈더니, 웨인왕 감독의 영화 <스모크>도 생각이 났다. 나는 평생을 포기하지 않고 몸이 허락할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이 ‘업’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원래는 내가 가지려고 엽서를 몇개 골랐는데,, 주차권 가지러 다시 굿즈 샵에 갈 기회가 있어서 고민하던 사진집을 질러버렸다. 그래서 그 엽서들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줬다.

1. Many bottles with her self portrait in old mirror frame
친구가 골랐는데, 그 사진 속의 비비안 마이어는 왠지 지금 우리 나이대와 비슷해 보였다.
2. Baby and grand father covering his face with big balloon
회사 언니가 골라갔다. 사진의 할아버지를 보니 자기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했다.
3. A beautiful woman with her black cat on her shoulder
남은 사진 중 내가 골랐다. 여자의 눈빛과 고양이가 맘에 들어서 회사 책상에 붙여 놨다.
4. A kid’s shadow from the opposite side of a weaving chair
회사 동생에게 줬다. 이 친구의 아들을 본 적이 있는데 너무 귀여웠던 기억이 나서.
5. A brown shadow of one person
예술 경영 분야에 관심이 있어 그쪽 분야를 공부하고 싶다는 회사 후배에게 줬다.

전시회에 가면 보통 제일 인상적이었던 작품 하나를 골라놓곤 하는데, 이 사진이 제일 마음에 남았던 사진이었다. 상처받은 듯 한 어린아이의 표정과 눈빛이 마음을 울렸다.

10월 30일, 오늘은 정말 비극적인 사건이 생긴 날이다. 젊은 친구들의 삶이 너무 허망하게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아 마음이 참 아프다. 인생이 이렇게 몇 분 차이로 결정이 될 수 있다는 게 정말 허무하네. 인생에 큰 사건, 사고 없이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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