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저장계 4 – SF단편 [감정저장계]

4. 분노

진과 미쉘은 분노 100의 감정을 쉽게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진이 미쉘에게 물었다. 
"너 살면서 가장 화가 났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봐"
미쉘은 한참을 생각하다, 얼굴을 찡그렸다.
"아 그것을 다시 보면 분노 100을 저장할 수 있을지 몰라"
그리고는 미쉘은 자기 책상 서랍속을 뒤졌다.

빨간색 퍼즐 한 조각이 나왔다. 
미쉘은 크게 한숨을 쉬며 감정저장계를 손에 꽉 쥐었다. 
분노 100은 쉽게 저장이 되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미쉘은 진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1년 전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졌다.
그 때의 일이었다.

미쉘의 취미는 퍼즐 맞추기.
그에게 선물하려고 1000피스 퍼즐을 샀다.
미쉘과 그가 좋아하는 영화 'Arizona Dream' 포스터였다.
그녀는 며칠 밤을 새워 퍼즐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 조각이 없어졌다.
아무리 집안을 뒤져 보아도 그 조각은 나오지 않았다.
하필이면 가운데 있는 조각이라 눈에 띄었다. 
퍼즐 박스를 찢어서 어떻게든 그 부분을 가렸다.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어쨌든 100% 완벽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직 추운 겨울, 포장을 한 그것을 그에게 전해주었다.
그날 밤 집에 도착한 그에게 전화가 왔다.
"이거 들고 오느라 너무 손이 시러웠어. 
그런데 뜯어보고 감동했어. 방에 걸어둘께.. 고마워"

며칠 뒤 미쉘은 그의 집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포스터가 뒤집혀서 방바닥에 그대로 놓여있는게 아닌가.
미쉘은 왜 이게 이렇게 있냐며 그에게 따졌다.

"아니, 걸려고 보니 포스터에 무언가 붙어있어서 떼버렸는데, 구멍이 생겼어. 
한 조각이 없었었네. 그래도 걸어놨는데, 볼때마다 그 구멍만 보이는거야. 
이 포스터의 전체 이미지가 눈에 안들어와.. 그래서 일단 내려 놓았어"

미쉘은 예민한 그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화가 났다.
정말 열심히 만들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그에게 화를 냈다.

어쨌든 그일에 대해서는 화해를 했지만,
그일 이후, 그들은 만나면 무언가 어긋난 듯한 대화와 느낌들에 불편했다.
그렇게 서로 불편한 시간을 보낸 후, 미쉘은 그를 떠났다.

그렇게 된 원인이 모두 그 없어진 한 조각 때문이라는 생각이 미쉘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미쉘은 며칠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급기야 생전 처음으로 수면제를 먹어보았다.
딱 한번 복용한 수면제.. 그건 잠을 잘 수 없는 것보다 더욱 고통이었다. 
눈은 감겨 뜰수 없는데 정신은 깨어 있는 상태, 침대가 몸을 빨아들이고 있는 듯한 느낌.
그녀는 그렇게 힘들게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아픔을 달래고자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대학 동기였고, 너무도 편한 친구였다.
항상 미쉘의 주변에서 그녀를 보살펴 주었다.
그와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가 화장실을 간다며 일어서다 지갑을 떨어 뜨렸다.
미쉘이 지갑을 주어 올리는데 지갑속에서 툭 떨어지는 그것.. 
그 없어진 빨간 퍼즐 조각이였다.
그는 당황했다. 그렇지만 멋적게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가 컴퓨터 손본다며 너희 집에 간적이 있잖아.
그때 너, 그 남자에게 줄 퍼즐을 맞추고 있는데,
좀 질투도 나고, 장난도 치고 싶어서 이걸 가져와 버렸어.."

그녀는 그 자리에서 그 조각을 주머니에 넣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갔다.
그 이후 그녀는 그 친구를 다시 보지 않았다.

그녀의 분노는 그 친구와 그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그 친구의 질투와 장난으로 일어나 버린 일련의 사건들과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했던 것,
그리고 친구의 어렴풋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으면서도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를 주변에 두었던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한 조각의 구멍도 참지 못했던 그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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