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네살배기 신동 화가 뉴욕 미술계 떠들썩 
 
[중앙일보 2004-10-01 00:11]  

두 돌 때부터 그리기 시작 작품 사겠다는 사람 줄 서

 

네살배기 여자아이가 뉴욕 화단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BBC 인터넷판은 29일 뉴욕주 빙햄튼에 사는 말라 올름스테드(4)가 추상화의 대가 바실리 칸딘스키나 잭슨 폴록에 견줄 만큼 놀라운 재능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 꼬마 천재의 작품은 지금까지 25점이 팔렸으며 이를 통해 벌어들인 돈이 4만달러(약 44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라가 붓을 잡기 시작한 건 두 돌이 되기 직전부터였다. 소일거리 삼아 아내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던 아버지 마크는 딸이 옆에서 놀아달라며 귀찮게 굴자 딸의 주의를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해 붓과 물감을 쥐어줬다.

뜻밖에도 딸에게 붓과 물감은 장난감 그 이상이 돼버렸다. 이후 말라는 브러시와 주걱.손가락.케첩병 등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유화를 그려 왔다. 말라는 1일부터 뉴욕의 한 화랑에서 전시회를 연다. 화랑 대표 앤서니 브루넬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전시회에 소개될 10점 중 6점이 이미 팔려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남은 4점도 8000~1만달러 정도의 가격에 팔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새 작품이 나오기만 하면 바로 사겠다는 사람이 일본인을 포함해 20명쯤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소녀의 작품은 도저히 네살짜리가 그린 것이라고 믿기 힘들다"며 "색채가 생동감 있고 붓과 손가락의 터치가 대단히 표현력이 풍부하다"고 칭찬했다.

그는 말라가 성인이 된 후에도 화가로서 재능을 보일 것 같으냐는 질문에 "아무도 단언할 수는 없지만 지난해부터 지켜본 바로는 작품 수준이 날로 나아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에프라임 키숀 | 디자인하우스 | 1996년 11월 

그림 하면 밀레의 만종이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정도는 돼야 한다고 믿는 미술 애호가들. 그러나 설치니 퍼포먼스니 말도 뜻도 어려운 작품을 보고 `시대 정신을 담은 탁월한 작품`이라는 평론가의 평에 주눅이 들어온 미술 대중. 디자인 하우스에서 나온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는 이들의 심정을 후련히 대변해 주는 그런 책이다. 금속조각과 미술사를 전공한 유태인 미술학자 에프라임 키숀이 쓴 이 책은 요즘 `그림 같지 않은 그림`에 대단한 불만과 함께 그들을 공박할 이론적 틀을 갖고 싶었던 미술 애호가들에겐 안성맞춤이다. 

`나는 오늘날 명성뿐 아니라 부까지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를 예술가로 생각지 않는다.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 동시대의 사람들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음,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낸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다` 피카소가 남긴 이 말에 용기백배한 저자는 앤디 워홀, 요셉 보이스, 프랭크 스텔라, 요셉 알버스 등 현대미술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많은 미술가들을 거침없는 독설로 비판하고 있다. 

`망가진 재봉틀과 몇가지 부엌집기들을 가지고 5분내에 현대적인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콜라주」 옆에서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예술가들은 고단수의 익살꾼`이라는 비난은 독창적 아우라(신기)를 상실한 예술가, 반짝하는 아이디어와 일회성 유행에 휩쓸려 다니는 현대미술가의 천박성을 비판하는 말이다. 이런 천박성은 관료집단화한 예술집단과 나름의 경제 논리로 무장돼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정작 미술계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가장 영향력 있는 세력은 엘리트 관료층과 모더니즘 사이의 은밀하면서도 막강한 동맹이며, 재원을 가지고 매스미디어에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예술 마피아와 국회의원, 장관, 시장들 사이의 음모다.` 

여기에 평론가들은 한술 더 뜬다. 작품 「부풀어오른 콘돔」에 대해서 `태아에 근접하는 파괴계수의 폭발을 예고하는 기하학적이고 몽유병자적인 의식의 형태`라고 말했다. 도무지 뜻이 와 닿지 않지만 대중들은 `반항`하기 어렵다. 키숀은 따라서 현대미술을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면 크게 웃으라고 권한다현대 미술은 예술광대들의 장난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원하다. 하지만 반대로 그에게 묻고 싶은 질문하나. 현대미술에서 이런 도발이나 도전이 없었다면 20세기 미술은 여전히 신비화한 여성의 벗은 몸, 혹은 나른한 풍경화 외엔 별 대안이 없었을 텐데. 그는 과연 그런 미술세상을 원했던 것일까. 반성완 (한양대 독문과)교수의 번역이 매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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