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ng Fu fighting

한심한 로맨티스트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자 판초를 동시에 품은 남자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주성치라는 남자를 좋아한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그의 아이를 낳거나 그의 수족을 닦아주고 싶은 정도다. 뭐, 그의 집 거실 깔개 같은 것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말하자면 그는 나의 유일한 이상형이다. 참고로 내 주변에는 주성치랑 결혼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얼빵한 성인들(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이 상당히 많은데,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세상에는 나처럼 병세가 완연한 주성치 광팬들이 많은데, 올 1월 개봉하는 <쿵푸 허슬>도 목놓아 기다리고 있다. 주성치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은 <씨네21>이 할 일이고, 나는 내가 아는 주성치 스타일과 인간적인 매력에 대해서만 읊는 것이 좋겠다. 그래도 좋을 것이 나는 주성치 단독 인터뷰를 무려 2번이나 한 사람이다. 게다가 4년 전 홍콩에서 한 현지 인터뷰에서는 그의 반나절을 독점하며 그에게 쿵후 발차기까지 시켰던 사람이다.


4년 전 ‘샹그릴라’라는 홍콩의 한 특급호텔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단박에 그에게 반하고 말았다. 당시만 해도 그의 영화는 품위와 상식을 버려야만 비로소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종류의 B급 영화였는데, 실제로 만나본 그 저질 코미디의 왕은 자유롭고 유머러스한 가운데 내가 만나본 어떤 배우보다 품격이 있었다. 그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고고한 분들은 내가 아무리 망가진 모습을 보여줘도, 아무리 웃긴 말을 해도 절대로 웃지 않는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의 품위 없는 행동이 내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주 예의 바른 사람이다.” 그런데 혹시 알렉산더 맥퀸 스타일이 세상에 알려지기 훨씬 이전부터 수트에 운동화를 신었던 주성치의 남다른 감각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시 그는 정장 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고, 우리가 만난 곳은 말쑥한 정장 차림이 아니면 출입조차 할 수 없는 특급호텔이었다. 그는 말했다. “길거리에서 아무 때나 내키는 대로 뛰는 걸 좋아해서, 이렇게 어떤 차림에나 운동화를 신게 됐습니다.” 짧았던 두 번째 만남은 더욱 인상적이다. <소림축구> 홍보차 내한했을 때 역시 한 특급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앉으면 복사뼈가 다 보일 정도로 길이가 짧은 모즈 룩(mods look·몸에 꼭 맞게 입는 방식) 스타일의 밝은 회색 바지에 러닝 슈즈를 신고 있었는데, 그의 날렵하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발목을 헐렁하게 감싸고 있는 주름진 목양말이 아주 근사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타이트한 흰색 러닝셔츠에 물 빠진 청재킷을 입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영화를 패러디할 수 있고, 모든 영화 문법과 논리를 뛰어넘어 모든 걸 자기 식대로 바꾸고 해석하는 자신의 영화 스타일을 대변하는 옷차림이었다. 그때 난 간신히 입을 뗐다. “Remember us?” 주성치는 처음엔 약간 냉담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미안하다고 하더니 금방 “그런데 그때 왜 나한테 쿵후를 시켰냐고” 물어 우리를 순식간에 웃게 만들었다. 슬픈 정서를 쫙 깔아놓고는 느닷없이 웃겨버리는 영화를 만드는 자다운 유머였다.


주성치가 만든 인물들은 대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를 닮아 있다.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여전히 꿈과 사랑이라고 믿는 한심한 로맨티스트들의 무모한 도전! 그런데 그런 슬픈 영웅을 끝까지 보필하는 계산적인 현실주의자 판초는 주성치 그 자신이다. 주성치가 완벽한 남자처럼 보이는 건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슬픔과 웃음, 이상과 현실이라는 양극단을 조율할 줄 아는 남자가 어디 흔한가?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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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너무 부럽다!! 주성치가 기억해주다니!!

주성치랑 결혼하고 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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